만경읍(萬頃邑)
동쪽은 청하면과 백산면,남쪽은 백산면과 성덕면,북쪽은 바다 건너 옥구군 회현면과 대야면,서쪽은 진봉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만경읍은 본래 백제 시대에는 두내산현(豆內山縣)으로 두능,두산 (杜陵, 杜山)이라고도 칭하였으며,신라시대에 만경현으로 개칭. 김제군에 영속되었고, 고려시대에 이르러 일시 임피현으로 이속되었다가 예종 원년에 감무를 설치하였으며,그 후 현으로 승격과 동시 부윤현을 관할하였다. 그 뒤는 만경군 지역으로서 만경읍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군내면이라 하여 소죽(小竹), 내죽(內竹),소동(小東),대동(大東), 농촌(農村),장산(長山),대죽(大竹),용동(龍洞), 산본(山本), 외신(外新),독곡(篇谷),중리(中里),외서(外西), 동문내(東門內), 남문내(南門內),남산(南山), 송전(松田)의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북면의 화포(火浦),장흥(長興), 창자(昌子), 대토(大土), 몽포(夢浦), 몽서(夢西),몽동(夢東), 장등(長嶝),화양(化陽),옥산(玉山), 소토(小土),중흥(中興),율리(栗里), 춘천(春川),신덕(新德),제항(提項),송상(松上), 송중(松中),송하(松下)의 19개 리,북일도면의 공향리(公鄕里) 일부,남일면의 부흥리(復興里)와 인흥리(仁興里) 일부,김제군 마천면의 신창리(新倉里)와 송방리(松方里) 일부, 김제군 연산면(延山面)의 산치리(山雄里) 일부를 합하여 「만경면」이라는 이름으로 김제군에 편입되어 대동, 장산,만경, 화포,몽상,소토,송산의 7개 리를 관할하고 있었다.
1995년 1월 1일 김제군이 김제시와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만경면」이 되었는데, 1995년 3월 1일자로「만경읍」으로 승격 되었다.
만경(萬頃)을 글자대로 풀면 논두렁이 만 개라는 뜻 인데,이는 곧 들이 넓다는 뜻이라고 한다.
죽산면 (竹山面)
동쪽으로는 월촌동, 남쪽으로는 부량면과 백산면, 서쪽으로는 바다 건너 부안군 동진면,북쪽으로는 성덕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죽산면은 본래 김제군 반산면(半山面) 지역으로서 신성(新成), 대옥산(大玉山),소옥산(小玉山), 내재(內才),제내(堤內),신흥(新興),경제(景提),종남(宗南), 신평(新平), 화교(禾橋), 죽동(竹洞),자고(自古),대장(大長),가칠(加七),석산(石山), 명량(鳴良), 신월(新月), 죽산(竹山)의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서포면(西浦面), 화동(花洞),대장(大長), 창리(倉里), 서포(西浦),마포(麻浦),상신(上新), 하신(下新), 상포(上浦), 마삼(馬三), 유흥(流興), 외리(外里),오봉(五峰), 쌍궁(雙弓),내리(內里), 죽산(竹山),소제(蘇場),영구(靈九),하원(下院),명마(鳴馬),신동(新洞)의 15개 리, 대촌면(大村面)의 신학리(新學里)와 소산리(所山里), 월산면(月山面)의 후장화리(後長華里),부량면(扶梁面)의 옥동리(玉洞里)와 신제리(新堤里),부안군 이도면(二道面)의 방목리(芳木里) 일부와 고부군(古阜郡) 백산면(白山面)의 대선(大仙), 홍산(洪山),옥성(玉盛),종신(宗新),대창(大倉),서포(西浦), 연포(連浦), 신흥(新興)의 8개 리로 개편 관할하고 있다.
1995년 1월 1일,김제군이 김제시와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죽산면」이 되었다.
죽산면 행정구역명은 현재 명량산 부근이 명량향(鳴良鄕)으로,고종 연간(年間)의 읍지(邑誌)에 수록된 김제군의 지도에는 반산면으로 되었다. 또한 동국여지기(1670년 현종 11년) 호구총수(1789년 정종 13년) 대동지지(1864년 고종 1년)에 의하면 죽산면은 반산면,식포면(서해),홍산면으로 나뉘어 있었다. 1895년 고종 32년부터 1914년의 지방통치제도 개편으로 죽산면(8리로 사해 + 홍산 + 반산)이 김제군의 17개 면의 하나로 내려왔다.
당시 식포는 원기리,조포리, 우마리,대장리, 소장리,홍산은 죽산리,외리,내기, 신기리,흑꽂리, 마삼북,삼강리,마포리,상포리,신리,유흥리, 영구리로 반산은 부안군과 경계로 동진강을 사이에 두었기에 동진강 물줄기 변화로 부안군 동진면 지역이 죽산면 면적으로 접해진 경우가 있었고, 부안을 통행하는 교통수단으로 동진 및 삼강리 나루터가 있었으나 지금은 동진교(東津橋)가 놓아져 차량이 통행되는 가까운 인접지역이 되었다.
백산면 (白山面)
본래 김제군 지역으로서 흰 돌이 많았기 때문에 백석면(白石面)이라는 이름으로 금동(金洞),삼수(三水), 석정(石井),사가(寺街),승방(承芳), 소음(所音), 황경(黃經), 자학(紫鶴),상서(上書), 하서(下書),요교(蓼橋),돌제(突堤), 옥정(玉井),석정(石井),상두악(上斗岳),하두악(下斗岳),상말(上未),하말(下未), 전남(前南), 학당(學堂), 후남(後南),불노(不老), 생건(生巾), 정자(事子), 하건(下乾), 부거(富巨),신리(新里) 등 27개 마을을 관할하였는데,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연산면(延山面)의 전석(前石),후석(後石),앙청(仰靑), 신리(新里),중건(中乾),점리(店里), 하건(下乾),부거(富巨),상상(上尙), 중상(中尙),하상(下尙),산치(山稚), 하조(下祖),상조(上祖),중조(仲粗) 등 15개 마을과 모촌면(母村面)의 신성(新成),수하리(水下里)의 일부 마천면의 월현(月按), 중대(中堂),목교리(木橋里)의 일부,만경군 동이도면(東二道面)의 조종리(祖宗里) 일부,만경군 남일면(南一面)의 부흥리(復興里),신점리(新店里) 일부를 합하여 백석면의 백자와 연산면의 산자를 따「백산면(白山面)」이라는 이름으로 김제군에 편입되었다.
동쪽은 용지면,서쪽은 성덕면과 만경면,북쪽은 청하면과 공덕면, 남쪽은 김제시와 경계를 이루는 백산면에는 11개의 리가 있었으나 1989년 1월 1일 김제읍이 김제시로 승격되면서 하리(下里),흥사리(興寺里),상동리(上東里)가 김제시에 편입되어 지금은 하정리(下亭里),상정 리(上亭里),상리(上里), 조종리(祖宗里),수록리(水綠里),부거리(富巨里),석교리(石橋里), 하서리(下西里) 등 8개의 리, 38개의 마을이 있다.
그러다가 1995년 1월 1일자 김제군이 김제시와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 백산면이 되었다.
용지면(龍池面)
동쪽은 완주군 이서면,서쪽은 백산면과 공덕면,남쪽은 금구면과 황산면,북쪽은 백구면과 경계를 이루는 「용지면」은 본래 김제군 지역으로서 「개토면 (介吐面)」이라하여 명당(明堂),신평(新坪), 중평(中坪), 구평(舊坪),송정(松亭), 죽순(竹筍),영동(永洞), 사산(四山),신사(新寺), 마교(馬橋)의 10개 리를 관할하였는데,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모촌면(母村面)의 부교(父敎), 무수(無愁), 와리(瓦里),월암(月岩),용지(龍池),신기(新基), 효정(孝亭), 서두(書頭),군요(君要),신성(新成),수하(水下),임상(林上),마교(馬橋), 화룡(化龍), 신리(新里),서정(西井),쌍룡(雙龍),이작(伊作),신정(新井)등 19개 동리와 금굴면(金堀面)의 마교(馬橋),천수(天水),송삼(松三),용와(龍臥), 장산(長山), 신교(薪橋),신기(新基),영등(永登),묘동(卯洞), 상금(上金), 하금(下金),재남(才南) 등 12개 동리,회포면(回浦面)의 도도리 일부, 목연면의 월연리(月延里) 일부,공동면(公洞面)의 상모(上毛), 영천(永川) 일부,완주군 이서면(伊西面)의 은교(銀橋),신기(新基), 매암(梅岩), 대농(大農) 일부를 합하여 마을 이름에 용(龍)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연못이 많으므로「용지면」이라는 이름으로 김제군에 편입되었다.
「용지면」에는 부교,용암,효정,반교,와룡,신정,남정,구암,송산,봉의,예촌, 용수,장신, 금평 등 14개 리가 있는데 1994년 12월 22일자 금평리, 남정리가 완주군,전주시에 편입됨에 따라 12개 리가 되었으며,1995년 1월 1일자로 김제군이 김제시와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용지면」이 되었다.
백구면(白鷗面)
본래 김제군 지역으로 공동면(公洞面)이라 하여 마전,난산,반월, 신모, 둑령, 맥상, 창산,영천,상모,중모, 석담,신복,신성의 13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회포면(回浦面)의 상도, 상신,신덕, 쌍강, 도도, 신흥,유강의 7개 동리,목연면(木淵面)의 봉산,화죽, 월연,부용, 외가전,내가전, 유천,강좌,율포,신정,장신, 제내, 백구, 신천, 우담,고잔의 16개 동리, 모촌면(母村面)의 이작리 일부,익산군 춘포면(春浦面)의 월포리, 고잔리, 신덕리, 회화리 일부,익산군 남일면(南一面)의 감상리,동자포리 일부,전주군 이북면(二北面)의 신오리 일부,만경군 북이도면(北二道面)의 동계리 일부를 합하여 「백구정(백구리)」의 이름을 따「백구면」이라 하여 김제군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여 만경강을 경계로 삼정리 일부를 이리시에,반월리,강흥리 일부를 익산군 춘포면에 넘겨주는 동시에 익산군 오산면의 목천리,남전리,신지리의 일부를 편입시켰다.
동쪽은 완주군 이서면,서쪽은 공덕면,남쪽은 용지면,북쪽은 만경강 건너 익산군의 오산면과 춘포면,백구면이 있다. 백구면에는 월봉,부용,유강, 삼정, 백구,반월,석담, 학동, 마산, 영상,도도, 강흥, 도덕 등 13개 리가 있는데, 1994년 12월 22일자로 도도리,강흥리,도덕리 등 3개 리가 전주로 편입되어 10개 리가 있는데,1995년 1월 1일자로 김제군이 김제시와 통합됨에 따라서 김제시 「백구면」이 되었다.
부량면 (扶粱面)
부량면이라 부르게 된 것은 어느 때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른 읍면은 명칭이 몇 번씩 바뀌었는데 부량면의 명칭은 옛날부터 부량이라 했다.
「부량면」은 본래 김제군의 지역으로서 「부량면」이라 하여 후포, 전포, 신평, 대장, 옥동,신정, 사정,제월,초승,신양,서두,신용,방하,포교 등 14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홍산면의 상포리와 유흥리 일부,태인군(泰仁郡) 용산면(龍山面)의 고잔리(古棧里)와 군포리 (軍浦里) 일부,태인군 사곡면(師谷面)의 소칠리(小七里) 일부, 고부군 백산면(白山面)의 주소리(舟所里) 일부를 합하여 김제군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95년 1월 1일 김제군이 김제시와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부량면」이 되었다.
공덕면 (孔德面)
본래 만경군(萬頃郡) 지역으로서 만경읍내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일도면(東一道面)이라 하여 반곡,마현, 남당, 두동, 내동, 내서,외황 7개 리를 관할하였는데ᅵ,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이도면의 회룡,덕산,하방, 등롱,과동,신기,제말,명천,신평, 신성, 조령, 상방, 신흥,명마,광동, 덕동, 송산,존걸, 공덕의 19개 리,북이도면의 저성, 저산,지수, 송정,진전,용전, 진산,동계의 8개 리,북일도면의 중석리, 내포리 일부,목연면의 석한리,장천리 일부, 같은 군 백석면의 상서리(上西里),하서리(下西里)의 일부를 합하여 「공덕면」이라는 이름으로 김제군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95년 1월 1일 김제군이 김제시와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공덕면」이 되었다.
동쪽은 백구면,서쪽은 청하면, 남쪽은 백산면, 북쪽은 익산군 오산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공덕면」에는 저산,동계, 희롱,제말,공덕,마현,황산 등 7개 리가 있다.
청하면 (靑蝦面)
청하면은 김제시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옥구군과 경계선이다. 청하면은 원래 만경현의 영속지이던 북일도면(北一道面)과 마천면(馬川面)을 서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청하면이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청하면에는 동지산리,장산리, 대청리,관상리,월현리의 5개 리가 있고, 동지산리에는 9개 마을, 장산리에는 6개 마을, 대청리에는 2개 마을, 관상리에는 6개 마을,월현리에는 5개 마을이 있다.
성덕면(聖德面)
동쪽으로는 백산면,남쪽으로는 월촌면과 죽산면,서쪽으로는 광활면, 북쪽으로는 만경읍과 경계를 이루는 성덕면은 본래 만경군(萬頃郡) 지역으로 그 위치가 만경읍내의 남쪽이 되므로 남일면(南一面)이라는 이름으로 도상, 석동,도하,양지, 신평, 대석, 용소, 소석,신등,인흥,다복,대목, 탄상,탄하, 옥동,신점,부흥의 21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이면의 모산, 나시, 고현,남포의 4개 리와 상서면의 부동과 정동의 일부,군내면의 남산리 일부, 김제군 대촌면의 연동리 일부를 합하여 이곳 성덕산(군산천)의 이름을 따 「성덕면」이라는 이름으로 김제군에 편입되어 대목, 대석, 묘라,석동,성덕, 남포의 6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1955년 1월 1일 김제군이 김제시와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 「성덕면」이 되었다.
진봉면 (進鳳面)
동쪽은 만경읍,남쪽은 성덕면과 광활면,북쪽은 바다 건너 옥구군 회현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본래 만경군 지역으로서 면의 위치가 만경읍내 서쪽이기 때문에 상서면 (上西面)이라는 이름으로 상궐,하궐,신기,석교, 하수내,갈전,정서, 가실,정동, 부동, 다상, 다하,신회, 효정,정당의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하일도면(下一道面)의 부흥, 규동,심포,남하,남상,안하, 길꽂, 거전 8개 리,하이도면(下二道面)의 석소, 석치, 인향, 고사, 종야 5개 리,북면(北面)의 대덕, 전중,광덕, 화양,옥산 5개 리,남이면(南二面)의 모산, 나시의 일부를 합하여 진봉산의 이름을 따 「진봉면」이라는 이름으로 정당,가실,상궐, 고사,심포의 5개 리로 개편되었는데,1949년 8월 15일 남쪽에 개간하였던 은파리,옥포리,창제리를 분할하여 광활면으로 독립시켰다.
1995년 1월 1일, 김제군이 김제시와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 「진봉면」이 되었다.
금구면 (金溝面)
동쪽은 완주군 구이면, 남쪽은 금산면,북쪽은 완주군 이서면, 서쪽은 황산면과 봉남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금구면」은 본래 금구군 지역으로 동도면 (東道面)이라 하여 용지,성길,장교,상학,고적, 영천,어전 등 7개 마을을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면, 대장, 오양,동화,지봉, 목련, 봉월, 율암 등 7개 마을,서도면의 상하,양명, 하신, 선약,대복,용정, 하하,상리 등 8개 마을,낙양면의 둔산, 불노,중평,신흥, 장흥,사방 등 6개 마을,남면의 송내리 일부, 일북면의 학성리 일부,이북면의 용은, 옥성리 일부, 전주군 우림면의 축령리,전주군 이서면의 앵곡리 일부를 합하여 「금구면」이라 하여 김제군에 편입되어 용지,금구,선암,월전, 대화,오봉, 상신,하신,용복,산동, 청운,낙성의 12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35년 1월 15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쌍감면(지금의 황산면)의 옥성리가 편입되어 13개 리가 되었는데, 1995년 1월 1일자 김제군이 김제시와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금구면」이 되었다.
봉남면 (鳳南面)
본래 금구군 지역으로서 금구 읍내의 남쪽이 되므로 남면이라 하여 양정,만복, 구호,신덕,대하, 송내,평산,등용, 주자, 화암,하봉, 용반,유산,송정 등 14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하서면이 신정,우산,성리, 수월,회정,중리,도장 등 7개 동리와 일북면의 봉강,덕조 일부,초처면의’ 내광,’ 성덕,유덕 일부,서도면의 대복,용정 일부,수류면의 계암리’ 일부를 합하여 하리면이라 하여 오정,월성,서정,양전, 신호’ 도정,대송,평사,화봉, 용한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으며,1935년 1월 15일 행정구역 조정에 의하여 오정리를 황산면어1,용산리를 금산면에 넘겨주는 동시에 초처면의 신응,용신, 회성,행촌,구정,종덕,대광 등 7개 리 전역을 편입하여「봉남면」이라는 이름으로 김제군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89년 1월 1일 김제읍이 김제시로 승격되면서 월성리가 김제시에 편입되고,다시 1990년 8월 1일 양전리,서정리,도장리가 김제시에 편입되어 현재는 대송, 평사, 화봉,신호,신응,종덕’,행촌, 구정,회성, 내광,용신 등 11개 리가 있다. 그러다가 1995년 1월 1일,김제군이 김제시로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 「봉남면」이 되었다.
「봉남면」은 동쪽으로 금산면,남쪽으로 정읍시 감곡면, 북쪽으로 황산면과 김제시 봉황동,금구면,서쪽으로 김제시 월촌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황산면 (凰山面)
동쪽으로는 금구면,서쪽으로는 신풍동,남쪽으로는 봉남면,북쪽으로는 용지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황산면은 금구현에 속해있었으며,행정구역은 금구현을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일북면(一北面)과 이북면(二北面)을 합병하여 쌍감면으로 개칭하였다.
1936년 1월 15일 김제군으로 합병하면서 면행정(面行政)구역내에 유명(有明)한 명산(名山) 황산(凰山)이 있어서 황산면이라 개명(改名)하며 황산면이 되었다.
일북면 지역은 덕조, 난봉, 봉강,묘암, 연봉, 독화,백마,매산,남양,문명, 상교, 학성리)가,이북면은 두지,의곡,금마,마산, 홍동포,홍천리,용은리,대흥리, 진천, 용사,사동), 율산 등을 합한 지역이다.
또한 1936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하서면에서 우산 신흥마을이 오정리라는 이름으로 황산에 편입되고,황산에서는 율산, 사동,용사,용전이 금구로 편입되었다.
그 후 1989년 1월 1일 김제시가 탄생하면서 인구 5만명을 채우기 위해서 황산면에서 김제읍 지역으로 가까운 마을 오정리의 우산마을 신흥마을 황산리에서 덕조,봉산,와용, 강정. 난봉리에서 난산,봉곡, 묘암, 신성리 모두 10개 마을이 분리되어 봉황동을 탄생시켰다.
그 후 1994년 주민 편의를 위하여 황산면 남산리 상교(上橋)마을이 봉남면으로 편입되면서 황산면(凰山面)의 행정구역이 축소되어서 면세가 매우 빈약해졌다.
현재는 6개리 25개 마을만 남아 있다.
금산면 (金山面)
동쪽은 완주군 구이면,서쪽은 봉남면과 정읍군 감곡면,남쪽은 정읍군 산외면과 옹동면,북쪽은 금구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금산면은 본래 금구군 수류면(水流面)이라 하여 금성,용평,용정, 장흥,율치,상화, 금곡,구룡,시성,봉곡,봉의,봉암,계암,성암,용은,용동,월곡,구암,구호, 용성, 무평, 선동, 원평 등 23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과 통폐합에 따라 남면의 송정,하봉,유산 일부와 초처면의 유덕리 일부, 태인군 감산면의 사리 일부를 합하여 금산,장흥,화율,금성,삼봉,성계,쌍룡,구월,용호,선동,원평 등 11개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35년 1월 15일 금산사의 이름을 따 이름을 「금산면」으로 고침과 동시에 하리(봉남)면의 용산리와 전주군 우림면의 청도리를 합하여 현재는 13개리가 되었는데, 1995년 1월 1일 김제군이 김제시와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와 금산면이 되었다.
금산면은 교통이 사통오달이며 불교,천주교,기독교,원불교, 증산교,기타 종교의 집산지라고 불린다.
광활면 (廣活面)
동쪽은 성덕면,서쪽은 서해 바다,남쪽은 바다 건너 부안군 동진면,북쪽은 진봉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광활면」은 본래 동진강 하류의 개펄인데, 1923년 10월 일본인 재벌 아부방차랑(阿部房次郞)이 자기 자본 100만 엔을 일본 정부 보조금 100만 엔을 보태어 200만 엔으로 동진농업주식회사 (東津農業株式會社)를 창설하고 방조제를 쌓기 시작하여 만 3년 후 준공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이곳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으로 만들기 (내부경지정리공사) 까지는 다시 9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1928정보의 논이 생겨나 논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고「1답구」에서「9답구」까지 이름을 붙임으로서 이것이 곧 마을 이름이 되었다.
이 간척지의 행정구역은 진봉면 광활로, 치안은 성덕면 남포파출소가 맡아오다가, 1949년 8월 15일 진봉면으로부터 행정구역이 독립되면서 비로소 「광활면」이라는 이름으로 3개 리 9개 마을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 뒤 1952년 9월 17일,폭풍우를 동반한 강한 사라호 태풍으로 방조제의 일부가 유실되어 189ha의 논이 다시 개펄로 변해,3352명의 수재민을 내는 불행을 겪었으나 정부의 신속한 수재민 구호와 아울러 연차적인 국고보조금과 지방비 부담으로 유실된 방조제를 복구하여 1964년에는 원래와 같은 모습을 되찾았다.
일제강점기에 마을이름을 답구라고 불렀는데 해방 후에 학자들이 모여 우리말에 합당한 마을이름을 지어, 1949년부터 1답구는 선광으로,2답구는 학당으로,4답구는 진흥으로,이상은 은파리,3답구는 회령으로,5답구는 화양 1구. 화양 2구로,6답구는 시농으로,이상은 옥포리,7답구는 용평으로, 8답구는 신광으로,9답구는 구복으로 이상은 창제리로 불러오다가 인구 증가에 따라 1981년 7월 1일 행정구역을 조정함으로서 지금은 3개 리에 20개 마을을 관할하고 있다.
이조 선조 임금 때 전라관찰사를 지낸 바 있는 이서구(季書九)공이 망망한 바다를 가리키면서「구구지간(九區之間) 가활만인지지(可活萬人之地)」라고 했다 하는데,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고 넓은「광활면」은 만인의 땅이라 하기 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1995년 1월 1일,김제군이 김제시와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광활면」이 되었다.
요촌동 (堯村洞)
읍내 동변면 지역으로서 김제시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요촌동은 동쪽으로는 검산동,서쪽으로는 서암동,남쪽으로는 옥산동, 북쪽으로는 하동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요촌동은 본래 김제군 읍내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성황리,외리,도동리 일부와 입천면의 내리 일부를 합하여 요촌리라는 이름으로 김제면(읍)에 편입되어 됫배,성황댕이, 관응이, 나무전거리로 나누어 불렀고,다시 되바우,성황당,삼정목, 본정통,시장통,진밭머리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다가 행정구역 명칭으로 요촌 1구, 요촌 2구, 요촌 3구,요촌 4구,요촌 5구,요촌 6구로 부르기도 하였으며,후에 또다시 되바우,성황당,새장터, 삼정목,묵은 쇠전거리,본정통,사정거리,시장통,진밭머리로 불렀다.
그러던 것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마을의 수가 늘어나자 평화, 후암, 성황, 용성,요륜,벽성,화동, 문동, 중동,정동, 장전, 영동, 궁전 등 13개 마을로 나누어졌는데,1989년 1월 1일 김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김제시 요촌동이 되었다.
신풍동(新豊洞)
김제시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신풍동은 1998년 과 소동 통폐합으로 봉황동과 합쳐져 지금의 신풍동이 되었으며,동쪽으로 황산면,서쪽으로 교월동,남쪽으로 봉남면, 북쪽으로 요촌동, 백학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신풍동은 본래 김제군 입천면 지역으로서 1913년 김제역이 새로 생김에 따라 이 일대가 왕래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풍성하게 되 었다 하여 「풍년촌」또는 「신풍촌」이라 불리었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조정으로 용진리, 내호리,사진리,소검산,용호리의 각 일부가 흡수되어「신풍리」로 김제면(읍)에 편입되었다.
그 뒤 모새멀,젓배기,소속골, 안터 등으로 불리다가 다시 신풍 1구(평강,당사),신풍 2구(역전통),신풍 3구(전기회사뜸),신풍 4구(모새멀, 잿배기, 쇠전터), 신풍 5구(안터),신풍 6구(전기회사뜸,소속골)로 불리었는데 인구증가에 따라 다시 신풍 1구(샛터),신풍 2구(역전통), 3구(전기회사뜸), 6구(소속골), 7구(쇠전터),8구(모새멀),9구(안터), 10구(쇠전터), 11구(소속골)로 확대 개편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행정구역 명칭보다 샛터, 당사골, 남신,역전통,가마니조합 뒤,전기회사뜸,잿배기,모새멀,안터, 소속골, 쇠전터,창고부락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불렀다.
최근에는 또 다시 마을 이름이 바뀌어서 평당,당사,남신, 역촌, 동신,금성, 화신, 신흥,대촌, 내기, 당산,신당, 대흥, 대동으로 불리었는데 1989년 1월 1일 김제읍이 김제시로 승격됨에 따라 김제시에 편입되어 「신풍동」이 되었다.
「봉황동」은 김제시로 승격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동으로 봉남면의 월성리와 황산면의 황산리, 난봉리,오정리를 합하여 봉남면과 항산면의 머리글자를 따라 「봉황동」이라는 이름으로 김제시에 편입되었다.
「봉황동」에는 황산동,난봉동,오정동,월성동과 1990년 8월 1일 김제시에 편입된 도장동,서정동,양전동 등 7개의 법적동이 있었으며 1998년 소동 통폐합으로 신풍동과 통합되어 신풍동이 되었다.
검산동 (劍山洞)
본래 김제군 입천면 지역으로서 마을 뒤에 산의 지형이 마치 칼(劍)처럼 생겼다 하여「검산리」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입천면의 대검리,소검리,용곳리, 순동리의 일부와 백산면의 상말리 일부,금구군 일북면 남봉리 일부를 합하여 「검산리」라는 이름으로 김제면(읍)에 편입되었다.
그 뒤로 마을이 나누어지고 이름도 바뀌어서 대검산, 소검산, 화동골로 불리다가 다시 행정구역 명칭을 따서 검산 1구(화동골),검산 2구(소검산), 검산3구(대검산), 검산 4구(성당촌),검산 5구(됫배),검산 6구(양지편)로 불렀는데,사람들은 화동골,소검산,대검산,성당촌, 호잠,상록, 양지편이라는 이름을 더 즐겨 불렀다.
1989년 1월 1일 김제읍이 김제시로 승격됨에 따라 김제시에 편입된 「검산동」에는 화동,소검산,대검산,성당, 승암, 상록,양지 등 7개 마을이 있다.
교월동(校月洞)
김제시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교동은 동쪽으로 요촌동과 옥산동,서쪽과 남쪽으로 입석동, 북쪽으로 서암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본래 김제군 읍내서면 지역이었던 교동은 향교가 자리하고 있어「향교골」또는 「향교곡」, 「교동리」로 불리었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리,대리, 중앙리,옥리,서변리,입천면 내리, 월산면의 입석리와 제남리 일부를 합하여 「교동리」라는 이름으로 김제면(읍)에 편입하고 향교골, 사직단, 성산골,새터로 나누어 불렀다. 한때는 행정구역 명칭으로 교동 1구, 교동 2구, 교동 3구로 부르기도 하였으나,인구증가와 함께 향교골은 향교와 교남으로, 성산골은 성산과 신동으로 나누어 부르다가 1989년 1월 1일 김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김제시 「교동」이 되었다.
교동에는 향교, 교남, 신동,사직 등 4개 마을이 있다. 1998년 9월 26일자로 교동과 월촌동이 합해져서 교월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