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비(義犬碑)
김제시 순동을 가로 지르는 호남선 철로변 옆에 올림픽 기념숲이 있습니다. 여기에 주인을 구하고 대신 죽은 개의 넋을 위로하는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비는 높이 58㎝, 너비 40㎝, 두께 15㎝, 화강암으로 만든 의견비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지금의 김제시 옥산동에 김득추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김득추는 개를 데리고 멀리 있는 친구를 찾아 갔습니다.
술상 앞에 마주앉은 김득추와 친구는 술잔을 비우며 밀린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해는 벌써 중천을 넘어 서쪽하늘을 달음질 치고 있었습니다. 친구와 헤어진 김득추는 개를 앞세우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옷매무새는 흐트러지고, 걸음은 비틀걸음으로 얼마쯤 가다가 휘청거리는 몸으로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김득추는 몸을 가누기 어려워 그 자리에 누워 버렸습니다. 앞장서 가던 개는 다시 돌아와 코를 골며 자는 김득추 곁에 앉았습니다. 김득추 혼자만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김득추가 누워있는 산에 원인모를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놀란개는 김득추를 깨우려고 발버둥쳤습니다.
김득추를 깨울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개는 가까이에 있는 방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온몸에 물을 적셔가지고 달려와 김득추 옆 풀밭에서 뒹굴었습니다. 산불이 더 이상 번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기를 수백번, 김득추가 누워있는 풀밭근처는 물에 젖어 불길이 번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는 지쳐 불속에 쓰러졌습니다.
그런줄도 모르고 꿈속을 헤매던 김득추는 해가 서산머리에 걸렸을 때에야 비로소 눈을 떴습니다.
아들, 딸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개가 불에 타 흉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것을 본 김득추는 발등을 찧으며 후회했지만 개의 몸은 점점 싸느란히 식어 갈 뿐 이었습니다.
김득추는 불에 탄 개를 그 자리에 고이 묻어 주고 개의 무덤앞에 자그마한 비석을 세웠습니다. 비록 하찮은 짐승에 불과하였지만 은혜를 갚을 줄 아는 갸륵한 개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