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라한명(羅漢明)

  • 관리자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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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孝子) 라 한 명(羅漢明) (1735 ∼ 1809)

* 자 : 군탁 (君悼)
* 호 : 영이당 (永怡堂)
* 출생지: 김제시 옥산동 15번지
 
선생은 서기 1735년 영조 11년에 김제시 옥산동 15번지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후하고 영리하여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는 물론 경서(經書)까지 하였다. 더욱 효우(孝友)가 독신하여 부모의 병환(病患)시에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드리는 지극함과 부모님들이 세상을 떠나시자 부모님 묘옆에 삼상(三喪)이 지나도록 살피는 정성(精誠)을 다하였다. 선생은 성리학을 강론하니 선생이 크게 장허(漿許)하였을 정도로 탐구용학(探究庸學)하며 고문(古文)에 침잠(沈潛)하여 어렵(漁獵) 10권과 역대론(歷代論) 8권, 이수론(理數論) 3권을 저술(著述)하였다. 선생은 장수 황공세열(長水黃公世烈)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4남 1녀를 두고 지내다가 서기 180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순조 무자춘(純祖 戊子春)에 명정(命龍)하였는데 문간공 송치규(文簡公 宋穉圭)가 정려기를 찬(撰)하였고 판서 이익회(判書 李翊會)가 썼다. 고종조에 증통훈대부사헌감찰하고 다음해에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위도총부부총관(贈嘉善大表吏曺參判同知義禁府事衛都摘府副擺官)하고 팔효사에 배향되었으며 시문유고(詩文遺稿) 4권이 가장(家藏)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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