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산의 장수바위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1.31
  • 조회수 : 706

김제시 용지면 와룡리의 사철산은 옛날 신선들이 구름을 타고 가다가 잠시 쉬어가는 명산으로 백화가 만발하고 경치가 좋아 산 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 산위에 한번 올라가 볼 수 있을까 하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지만 산신령님이 엄하게 막아서 올라갈 수가 없었다.

 

하루는 와룡리 사람들이 모여 우리도 사철산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여 달라고 산신령에게 청원을 했다. 산신령은 그 말을 듣고 「매년 오월 단오날 하루만은 이 산에 올라와 즐겨라. 그러나 백명이상은 올라오지 말고 또 산에 올라와 한사람도 오줌을 싸면 안된다」 하는 조건부 허락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조건이라면 별 것 아니라고 모두들 좋아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곧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항상 와룡리를 시기해 오던 복흥리 마을에서 그 말을 듣고 우리도 사철산에 올라가겠다는 것이다. 와룡리 마을 사람들도 이백명이 넘는데 사백명이 넘는 복흥리에서도 가겠다니 큰일이다.

 

그것도 한 마을에서 오십명씩 가기로 한다면 해결되겠지만 와룡리에서 주장하는 선취특권과 복흥리에서는 인구 비례를 내세우니 타결을 볼 수가 없었고, 특히 예전부터 복흥리 사람들은 와룡리 사람을 깔보아 와룡리 사람들은 큰 피해를 당했으니 그런 면에서도 타결될 수가 없었다.

 

두 마을간에 몇 차례 타협안이 오고 갔지만 끝내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마침내 두 마을에서는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와룡리에는 '청석'이라는 장수가 있어서 모든 동민을 통솔했는데 청석은 나이가 이제 겨우 열여섯밖에 되지 않은 어린 사람이었지만 지혜가 뛰어났고 구척 장신에 힘이 항우와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는 어려서부터 복흥리 사람들의 행패에 분격하여 언제든지 복수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멀리 광주 무등산에 들어가 도사 밑에서 무술을 배우고 돌아온 소년이었다.

 

와룡리 사람들이 복흥리 사람들과 무력 대결을 결심한 것도 사실은 청석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청석이 무술 공부를 하게된 동기는 장차 복흥리를 억눌러야겠다는 자신의 소신도 있었지만, 또 마을 사람들도 그런 생각에서 유능한 사람을 뽑아 무술 공부를 하도록 주선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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