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벽골제의 문화적 생산력과 규모 - 벽골제, 學際間 연구로 풀어야 할 과제 (정윤숙, 2009년 11월, 농업사연구, Vol.8(No.2))

관리자| 2019-01-31| 247

목 차

 

Ⅰ. 서론

 

Ⅱ. 벽골제와 치수

 

Ⅲ. 벽골제의 문화적 생산력

 

Ⅳ. 1415년 · 지리정보 · 벽골제

 

Ⅳ. 결론 : 벽골제, 학제간(學際間) 연구로 풀어야 할 과제

전북 김제 부량면에는 약 1700여년의 역사를 가지며 존폐를 지속한 전장 약 3㎞에 이르는 고대수리시설 벽골제가 있다. 벽골제는 1420년 큰 폭우로 일부 제방이 결궤되어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하다가 일제강점기인 1925년 전북 동부의 운암제 설치 후 김제간선수로로 이용되면서 결정적 훼손을 맞게 된다. 1975년 한 차례의 부분발굴이 진행되었을 뿐 벽골제에 대한 연구는 고고학, 역사학, 수공학, 지질학 등 제 분야의 각론에 머무르고 있다.
“농사는 정치의 근본이요, 식량은 백성들이 하늘처럼 여기는 것이니 여러 주군은 제방을 수리하여 완전하게 하고, 논밭과 들을 널리 개간하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농경사회의 통치강령으로 역사시대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벽골제는 근대 이전 농경사회에서 국가기반시설에 해당하는 거대 제언으로 산업적 기능을 담당하였으며, 그로부터 다양한 문화적 파생을 낳았다.
본고는 산업적 기능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벽골제의 문화적 파생에 주목하고, 지리정보를 활용한 벽골제의 공간적 재구성을 통해 벽골제를 대한 인문·지리학적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김제만경이라는 공간 위에 1700여년의 시간 동안 벽골제가 끼친 다양한 족적은 어느 한 분야의 각론적 접근으로 조망하기 어렵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높은 위명으로 존재했던 벽골제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관련 학문분야간의 학제간 연구가 매우 절실히 요청된다.

키워드 : 호남, 벽골제, 국가기반시설, GIS, 여지도, 학제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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