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야 책으로 보기 3부

관리자| 2019-04-25| 260

三. 龍 楸(용 추)

원덕랑의 일행이 김제 동헌에 당도하였을 때는 이미 유품 태수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니까 닷새전 일이다. 인근 고을 토호들로 구성된 진정단이 바로 서울을 향하여 출발 직전에 전주 도독부로부터 왕명의 교지를 전달받은 유품 김제 태수는 시각을 다투어 인근 육개 고을에 파발을 띄워 김제에 초대하는 한편 토목 기술자들은 모조리 김제 동헌에 모이도록 조치를 했다.

금구현감(金構縣監) 야서현감(野西縣監) 만경현감(萬頃縣監) 무성현감(武成縣監) 고부군태수(고부군태수) 부령현감(府令縣監)등 육개고을 태수와 현감들이 모두 모였다. 이 자리에서 유품 김제 태수는 왕명의 교지를 낭독 해주고 자신이 벽골제 보수하는데 있어 요역에 총 책임이 있다는 것과 지방 기술자 동원 문제에도 총 책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불초 소직에게 이러한 막중한 책임이 내려진 것은 벽골제가 이 고을에 있기 때문이라고 믿어집니다. 그래서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영감님에게도 같이 주 어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해서는 둑의 보수가 급선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한 사실이며 여기 모인 우리들은 똑 같이 이 둑을 생명의 젖줄로 삼고 있는 동일한 운명에 놓여 있음은 재언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

『이러한 공동 운명체에 얽힌 처지에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서로가 책임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한결같이 합심하고 협조해서 발등의 불을 끄자는 데서 오늘의 모임을 갖는 의의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를테면 여기 모인 우리들은 연합체를 형성해서 한덩어리가 되어야만 농사철을 앞에 두고 이 크나큰 난공사를 기일내에 완성할 수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여러 영감님들의 고견은 어떠하신지요?』

이렇게 유품 태수는 차분하게 회의를 주관하고 의견을 종합해 나갔다.

『예... 참 좋은 말씀이십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는 우리 서로 합심해야지요.』

일당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유품 태수의 제안에 찬동하고 단합할 것을 다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은 공사에 대해서 고견을 들어보겠습니다.』

『김제 태수의 말씀대로 우리가 모두 연합체가 되어 단합해야 한다는 것은 재론을 요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공사에 있어 며칠이 예상이 되며 요역 증발은 몇 사람이나 해야될지 이게 가장 골자가 되지 않는가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서 먼저 그 계획을 작성하는게 선행되는 문제라고 제안을 하는 바입니다.』

고부군 태수의 의견이었다.

『그 말씀이 바로 골자가 되겠지요. 그것을 여기에서 계획을 작성한다고 하여 보았자 실정을 잘 모르는 관계로 시간만 소비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내용을 잘 알고 계시는 김제 태수에게 계획이 있을 것으로 믿고 이 자리에 그 계획을 공개토록 해서 타당여부를 거론하는게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의견을 올리는 바입니다.』

고부태수의 의견을 이어받은 만경현감은 이렇게 의사 표시를 했다.

『그게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관내이고 실무를 맡고 계시는 김제 태수에게 일임하는게 정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만장일치로 모든 계호기과 진행에 있어 김제 태수에게 일임되었다.

『그럼 여러 영감님들의 위임을 받은 입장에서 외람된 말이나 먼저 경과부터 간단하게 말씀 올리고 난 다음 계획을 밝힐까 합니다.』

『.....』

『삼한시대에 시축되어 그동안 오랜 세월이 흘러 둑은 파멸직전에 놓여 있습니다. 원형의 반절 이상의 흙이 무너져 가고 있는 실정에서 다섯 개의 수문도 모두 훼손되어 수문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둑이 구납 섣달의 때 아닌 많은 강우로 저수량이 불어나 위기일발에 놓여졌고 거기에 우수기에 또한 많은 강우로 부풀었던 둑이 무너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둑을 보호할 셈으로 수문을 열고 물을 빼 놓았습니다. 어차피 보수를 할 때는 저수지의 물을 빼야되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물을 뺀 관계로 둑은 아직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둑에 대한 간단한 설명에 이어 공사계획을 밝혔다.

『다음 공사계획은 이곳 토목 기술자들을 초청해서 세밀하게 세워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절대적인 것은 못되겠지요? 앞으로 서울에서 파견되어 오는 원사례 기술자의 주관도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다만 하나의 참고는 될 것입니다. 이런점에서 우선 우리가 해야할 문제만을 이 자리에 공개코자 합니다.』

『.......』

이윽고 유품 태수는 서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좌중에 펼쳐 놓았다. 펼쳐 놓은 백지종이에는 벽골제의 둑을 중심으로 인근 지대까지 환하게 그려져 있고 또 보수해야 될 곳 등을 소상하게 도면에 표시되어 있었다.

『이 도면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원제방의 길이가 一千八步(약 3,000m)에다가 양쪽 여수타 두 개와 가운데 세 개의 수문을 먼저 보수하고 급수로까지 손을 대 놓아야 완전 보수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농사철까지는 시일이 약 두달정도 남았습니다. 거기서 천후 사정으로 십여일을 공제하면 일할 수 있는 날자는 겨우 오십여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정을 효과적으로 올리기 위해서 도면과 같이 칠개 공사 구역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한 고을에 二百五十步((약 450m)씩 여기 모인 여섯 고을에서 맡으면 一千五百步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三百步와 수문 보수는 김제에서 맡기로 할 계획을 세워 보았습니다. 또한 지방 토목 기술자를 한구역에 다섯명 정도로 배치를 하고 근동 석수쟁이는 수문 보수에 나서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 설계와 계획이 어떠한지 거론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 훌륭한 계획입니다. 더 좋은 의견이 없을 것입니다.』

좌중은 모두 유품 태수의 세밀한 계획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 다음 계획을 말씀 해 드리겠습니다. 요역 인부가 문제가 되겠습니다. 하루 요역인부 수는 여섯 고을에서는 한 고을에서 오백명 정도면 되리라고 보아 집니다. 다만 내가 맡은 곳은 그 배의 수가 되어야 수문까지 동시에 보수가 되리라고 보아집니다. 물론 여기 따르는 식량은 각 고을 사창에서 출고하도록 나라에서 별도 지시가 시달되어 있어 인부 식량 문제는 염려를 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난 유품 태수는 또 하나의 두루마리를 꺼내 펼쳐 놓는다. 거기에는 인근 고을에서 요역 인부들이 왔을 때의 숙영 배치도와 토취장까지 세밀히 그려져 있었다.

『정말 놀라운 솜씨인데요! 어느새 이렇게 세밀한 도면까지 만드셨습니까? 아주 잘 되었습니다.』

모두 감탄을 했다. 이렇게 치밀한 계획을 세워놓을 줄이야 미처 몰랐었다. 결국 여섯고을 태수나 현감들은 유품 김제 태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기로 하고 다만 서울에서 기술진이 도착하여 공사가 시작된다는 소식이 오면 즉각 요역 인부를 동원해 준다는 굳은 약속을 하고 각기 고을로 돌아갔었다.

유품 김제 태수는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인근 지방 토목기술자 오십여명과 석수쟁이 백여명을 차출했다. 그중 훌륭한 기술자 십여명을 직접 본영에 두고 자문을 받으려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칠개공구와 오거 수문에 적당히 인원 배치까지 끝냈다. 또한 본영은 제견소(提見所)에 설치하게 하고 각 고을에서 오는 요역 인부들의 막사까지 적당한 자리에 수용할 수 있게끔 말끔히 지어 놓았다.

이렇듯 조종한 것은 유품태수 뒤에 딸 단야의 공이 숨어 있었다. 단야는 바깥 공기를 몸소 느끼고 듣고 한 것을 백성들 편에 서서 아버지에게 낱낱이 진언하여 서둘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완전한 태세를 갖추고 서울서 온 기술진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김제에 도착한 원덕랑 일행들은 안내를 받고 우선 객사(客舍)에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잠시후 유품태수의 초대를 받아 동헌에서 저녁 식사의 풍성한 대접을 받았다.

『낯도 설고 물도 설은 머나먼 길을 오느라 수고를 하셨소! 이제 목적지에 왔으니 긴장을 풀고 마음 놓고 주식을 들도록 하시오.』

유품태수는 원덕랑 일행을 맞아 들이고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주식을 권했다.

『말직에 있는 저희들에게 이렇게 성찬을 베풀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원덕랑 일행은 오랜만에 포근한 기분에서 주식을 대했다. 마치 어머니 품안에 안겨진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자! 술을 듭시다. 원사례는 아직 총각이라고 했던가요?』

유품태수는 온화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관기들을 시켜 술을 권한다.

『예... 그러하옵니다.』

원덕랑은 얼굴을 붉히면 어물거리며 대답을 했다.

『젊은 나이에 아주 좋은 기술을 익히었소!』

유품태수는 아주 흡족한 듯이 찬사를 보냈다.

『............』

『금랑부장은 김제가 처음이요?』

『예! 생소한 곳입니다. 극간 말만 들어오던 김제땅을 오늘에야 처음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이국 땅에 온 기분이겠군요?』

『예! 그러하옵니다. 비단 소직만 그런게 아니라 여기올 사람들은 모두 그런가 하옵니다.』

『그럼 차제에 구경을 하시도록 하오! 우리 군관에게 안내를 하도록 하겠소. 이곳은 옛 성들의 규모나 위치가 잘되어 있어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서해안에 접하고 있어 해적들을 방위하는 최전방이지요. 그래서 많은 군사력을 바다쪽에 두고 있지요. 국내에서 제일 넓은 들 일뿐더러 산이 보이지 않고 바로 논과 바다가 경계를 이루고 있어 해적들이 발 붙이기 사나운 곳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식량을 노략질하는 해적들이 주목하고 있는 지방이지요. 내일 밝은 낮에 한번 구경을 해보시오. 나라의 보물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될테니까요.』

『......』

『나 자신도 여기 부임해서 지방 선비들로부터 들은 이야깁니다만은, 이곳은 또한 군사적 요새지이기도 하지요. 백제가 나, 당연합군(당연합군)에 패망했을 때 백제에는 총명하고 충성스러운 장수 복신(福神)이 왜국에 가 있던 왕자 부여풍(扶余豊)을 사신을 보내 데려와 왕으로 삼고 유민(유민)들을 규합하여 백제 부흥 운동을 크게 벌렸는데 복신장수는 주류성(周留成)에서 최후까지 오랜시일에 걸쳐 신라군과의 육전,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이 이끄는 해상군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답니다. 그때 이곳은 신라군의 주둔지로서 알려지고 있지요. 군량미나 주류성에 대한 지형상으로 이곳에 기지를 둔 신라군은 백제 부흥군이 농성하고 있는 주류성을 공격하는데 있어 벽골제의 둑을 성곽으로 또는 통로로 이용해서 주류성 근처에 있는 고사비성(古沙比成=古礎)까지 방어선을 구축하고 주류성을 결정적으로 공격을 가해서 함락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서해안(西海岸)에서 내륙으로 통하는 해상군을 이곳 서, 북간에 흐르고 있는 만경강 입구에서 차단케 하는 중요한 군사적 기지로도 아주 더 없는 요새지라고 전하여지고 있지요.』

유품태수의 긴 설명을 듣고 난 금랑부장 일행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그저 멍청하게 있었다.모두 정말 좋은곳을 왔다고 내심 감탄하여 마지 않았다.

『예- 놀랍군요. 내일 자세히 견문을 하겠습니다. 참으로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에 오니까 언어(言語)가 약간 틀리는데 혹시 공사장에서 지장이 있을까 염려가 됩니다.』

아까부터 원덕랑은 이점을 근심하고 있었다.

『하하하.... 언어외에는 다른 불편은 없는가요!』

유품태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음식물이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풍속은 어떤지 가르쳐 주시면 참고가 되겠습니다.』

『크게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풍속은 그쪽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나 이곳 사람들은 특히 충(忠), 효(孝), 열(烈)이 강하지요.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도량이 넓고 음률(音律)을 좋아하죠. 비옥한 농토가 많은 곳이어서 그런지 부호들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음식물은 맛이나 양에 있어서 그쪽 사람들은 이곳 음식물을 흉내내지 못할거요. 기름진 땅이 되어서 물자가 아주 풍부한 곳이지요. 그리고 언어는 처음에는 약간 곤란을 느끼리라고 봅니다만은 조금 대화를 해보면 바로 통하게 될테니까 그다지 불편은 없을 것이요.』

『예. 잘 알았습니다.』

『내일 공사에 대해서는 다시 상의가 있겠지만 말이 나온김에 참고로 한 말씀 더하지요. 그곳 사람들과 이곳 사람들의 성격의 차인데 그곳 사람들의 성급한 성격에 비하여 이곳 사람들은 온순한 성격이지요. 말하자면 이곳 사람들은 싸움이 벌어져도 때리고 받는 것은 최종에 행하고 처음에는 말부터 시작하여 아주 장기전입니다.』

『장기전이라면 얼마나 걸리는가요?』

『때에 따라서는 이틀도 좋고 사흘도 끄는 아주 지구전이죠. 잘못도 없는데 상대방에게 당했다고 할 때 그런 예가 있지요. 두들겨 맞으면서도 기어코 시비를 분석하려하는 성미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특히 공사장에서 요역나온 인부들에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지요. 또한 이곳 사람들의 단결력은 강한데 있지요. 단합이 잘 안되면서도 유사시에 단결이 되고나면 아주 고약합니다. 저력이 있는 데다가 지구력이 강해서 처치난이죠. 앞으로 이점은 각별 주의해야 될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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