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야 책으로 보기 2부

김제벽골제| 2019-04-25| 256

원제봉(元濟鳳)의 셋째아들로 태어난 원덕랑(元德郞). 원제봉은 첫째아들 둘째아들을 모두 초년에 실패하고 뒤늦게 셋째아들 덕랑이를 겨 우 거두었고 그뒤 딸 하나를 더 두어 남매를 둔 셈이다. 그래서인지 귀여움과 사랑스런 생각에서 일찍이 덕랑이를 덕망 높은 학자로 아니면 문관으로 입지(立志)시키려 했다. 그래서 열살도 채 못되는 덕랑씨를 친구분에게 의탁해서 학업을 익히도록 했으나 진도가 그렇게 좋은편이 아니어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내흘(鄭乃努)장군이 찾아왔다. 마침 주석이 된 자리에서 원제봉은 아들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정장군은 덕랑이의 소질이 딴데 있는 것이라고 단정을 하고 나섰다.

또한 덕랑이를 맡고 있던 선생도 오래전부터 자기도 그러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원계봉은 두 사람의 말을 듣고 깨달음이 왔다.

그뒤 몇 날을 두고 심사숙고한 끝에 문관에서 무관으로 바꾸어 입지시켜 보기로 마음먹고 정내흘 장군에게 간청을 해 놓았다.

졸음이 찾아드는 어느 따스한 봄날 아침에 원덕랑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사랑채에 들어갔다.

『덕랑아-. 넌 나를 따라 갈 데가 있다. 오늘부터 너는 무술연마를 해야 한다. 어머님께 인사를 올리고 어서 떠나도록 하자!』

청천벽력이다.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명을 받고 어리벙벙하니 안채에 들어가 어머니 께 인사를 드리자 어머니는 손을 덥석 잡고,

『덕랑아! 네 아버지는 그저 초야에 묻혀 지내신 선비시지만 그 어른은 옛날 나라 에서도 으뜸가는 장군으로서 나라에 공도 많이 세우신 분이시다. 넌 그간 글공부도 많이 했지만 기골이 장대하고 담력이 좋다는 점에서 문관보다 문인이 되는게 역시 좋겠다는 그 장군의 말씀이시고 또 너를 보내주면 훌륭한 무술을 가르쳐 무관으로 가꾸겠다는 언약이 계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여러 가지로 생각한 나머지 오늘 너를 데리고 가는 거란다. 그렇다고 글 공부를 그만 두라는 것은 아니다. 무술공부를 하면 서도 한편으론 글공부를 게을리해선 안된다. 부디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도록 해라.』

어머니의 따뜻한 열기가 손을 타고 온 몸에 감돌았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비로소 떠나는 뜻을 알게 되었다.

『예-. 어머님 잘 알겠습니다. 하명대로 열심히 연마하여 훌륭한 우관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 어른이 작년 가출 오셨던 분이신가요? 고리눈에 귀밑까지 수염이 나고 아주 무섭게 생긴 어른 아니세요?』

『오. 네가 기억하고 있구나. 바로 그 어른이시다. 보기에는 무섭게 보이지만 네 아버지의 말씀이 아주 인자하시고 덕망이 높으신 분이라고 하시더구나. 부디 사념을 다 버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원씨가문에 빛을 내도록 해라.』

『예-. 그럼 소자 이제 그만 떠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어린 가슴에 청운의 꿈을 안고 용약 아버지의 뒤를 따라 떠났다. 금시 무인이 된 기분이다. 사십여리 길이 되었지만 피곤한지 모르고 조랑말 등위에 앉아 아버지의 교자뒤를 따랐다. 점심때쯤 되어서 어느 산 아래에 당도 했다. 이십호도 못되어 보이는 조그마한 동네였다. 높다란 뒷산이며 동구에는 고목들이 초연하게 솟아 있다. 동구앞에는 꽤 넓은 들판이 가로놓여 있고 시냇물이 굽이쳐 흘러 한폭의 그림처럼 운치가 있어 보였다. 마치 또 오랜만에 벗을 대하는 것처럼 불안스럽지가 않았다. 이윽고 동구에 이르자 아버지의 친구분이 영접하려고 나와 있었다.

『원로에 수고가 많으셨군요. 어서 들어 갑시다! 아-. 자제분도 같이 왔구려.』

반갑게 맞아 준다. 외모와는 다르게 친절하고 부드러웠다.

『그간 기체 안녕하시오. 일찍 못오고 이제 오게 되어 너무 민망하게 되었소이다.』

아버지와 친구분은 정중하게 인사 교환이 있었다.

『덕랑아- 이리 가까이 오너라. 이 어른께 인사를 올려야지.』

이렇게 되어 큰절을 하고 난 뒤 안내된 방은 한쪽 골방이었다. 앞으로 여기서 거처를 하며 무술을 연마하여야 한다고 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잠시후 하인의 전갈로 아버지와 장군 어른이 계시는 방으로 건너갔다.

『나는 이제 가겠다. 넌 이제부터 정 내흘 장군님을 스승으로 오시고 열심히 무술 공부를 하도록 해라. 이따금 하인을 보낼테니 너는 집에 올 것 없이 스승의 가르침 을 잘 받도록 하여라. 그게 너의 갈길이다. 꼭 명심하여야 하느니라!』

아버지의 엄격한 분부이시다.

『참고 견디고 연마하여 꼭 무관이 되겠어요. 아버지-』

정말 훌륭한 무관이 되겠다고 다짐을 했다.

『오-. 말씨도 아주 씩씩하구나. 됐다. 이만하면 되었어...』

정내흘 장군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결심도 대단하구나. 오늘은 먼길을 오느라 고생을 했겠지? 오늘은 푹쉬고 내일부터 무술을 익히는 거다.』

이렇게 되어 무술 공부는 시작이 되었다.

원덕랑은 기골이 장대하고 총명한 편이어서 일진월보 검술은 날이 갈수록 심오해져 갔다. 거기에다 가르치는 스승이나 배우는 제자가 혼연일체가 되고 보니 더욱 발전이 빨랐다. 그래서 정내흘 장군은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이라고 애지중지 정성을 기울였다. 또한 원덕랑도 전심전력을 다해 꿈을 가꾸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이 지나고 해 가 바뀌어 다시 봄이 돌아왔다. 검술공부를 한지도 벌써 일년이 된 셈이다. 겨우 일년 의 검술 연마에서 이 삼년위 선배들보다 실력면이나 위품면에서도 훨씬 뛰어나 은근히 스승인 정 내홀 장군도 자신의 영광처럼 자부마저 하고 있는 터였다.

이러던 어느 날 정 장군은 원덕랑을 앞에 세워 놓고

『덕랑아-. 넌 이제 마술공부도 겸해야 되겠다. 내가 말 한필을 구해 놓은 것이 있으니 내일부터는 말타는 공부를 하도록 해라.』

『네 감사합니다. 사부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실은 말타는 것을 원덕랑은 갈망하던 차였다. 말타는 기술도 장족의 발전을 하였다. 두달도 못되어 종횡무진 전쟁터에서 달리는 용맹스런 장군의 모습과도 같이 당당 해 보였다. 한여름 수백리길 산야를 한나절이나 달리다 보니 사람 보다 말이 더 지쳐 있었다.

그래서 원덕랑은 시냇물가에 이르러 말 고삐를 잡고 말에 물을 먹이고 말등위의 땀과 먼 지를 씻어주고 있었다. 갑자기 말이 무엇에 놀랐는지 경풍을 일으켜 앞발을 들고 울부짖었다. 아무런 방비가 없었던 원덕랑은 곤두박질을 당하고 말았다. 어이없이 곤두박질 을 당하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시냇물에서 일어났다. 어디선가 박장대소하는 웃음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옷이 흠뻑 젖어 그렇잖아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던 참이라서 흘깃 소리나는 쪽을 바라다 보았다.

『아-니. 젊은이 정말 미안한걸! 우리 때문에 그 꼴이 된 것 같군.』

때마침 시냇물 건너 둑을 지나던 두 사람의 노인이 멈칫 서 있었다.

한 노인은 백발이 성성하고 기다란 수염에 풍채가 좋았다. 순간 치밀어 오르던 화는 씻은듯이 없어지고 오히려 원덕랑은 겸손해졌다.

『아닙니다. 말이 경풍을 일으킨 덕으로 이렇게 되었는가 하옵니다.』

원덕랑은 공손히 말을 마치고 말고삐를 다시 잡고 =둑으로 올라섰다.

『젊은이의 댁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옷을 그렇게 망쳐가지고는 어디 가겠나! 우리 와 같이 이 건너 마을에 가서 옷을 말려 입고 가는게 어떻겠나?』

풍채좋은 노인이 이렇게 말하자

『내가 미안하게 되었는걸. 길을 가리킨다는게 이 지팡이를 들어 내 저은 것이 화 근이 되었단 말이야. 그래서 말이 물에 비치는 그림자에 놀랜 것 같구만 그래.』

다른 노인의 말이다. 듣고 보니 그럴싸 했다. 풍채는 그렇게 좋은편이 아니었지만 덕이 있어 보였다.

『노인장 어른들 말씀은 고마우나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동네에 들어가겠습니까? 여기에서 옷을 말려 입고 집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지팡이를 저어서 물에 비추어 말이 경풍을 냈어도 명색 무관을 꿈꾸는 소생이 대비를 않고있다가 이런 꼴을 당한 것은 소생의 불찰입니다. 어찌 노인장의 허물이 되겠습니까. 바쁘실텐데 어서 이만 가 보시지요.』

원덕랑은 또한번 정중하게 아뢴다.

『거. 참 보기 드문 젊은이구먼. 그런데 길을 잘못 들었어. 우리가 바쁘지 않으면더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는데...』

풍채좋은 노인은 옆사람도 안들리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름이 아니고 건넛마을 최부자가 새로 집을 짓는데 이 부근에서는 처음 보는 궁궐같은 사랑채를 짓는다네. 그런데 이 어른이 집터와 택일을 잡아준 어른이 되어서 지금 꼭 가셔야 할 일이 있다네. 그래서 같이 가자는걸세. 젊은이도 여기서 그럴 것 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가는게 어떻겠나?』

다른 노인이 말을 받아 같이 가기를 권한다. 이 노인은 원덕랑이의 옷이 젖은게 자기의 과실인양 민망해 한다.

『말씀은 고마우나 어떻게 초면부지에 제가 갈 수 있으오리까? 어서 어른들께서 나 가시지요. 차라리 여기서 옷을 말린 뒤 제가 찾아 가겠습니다.

『응. 그게 좋겠군 그럼 옷이 마르면 꼭 와 주게나!』

풍채 좋은 노인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원덕랑을 유심히 훑어 보고 고개를 끄덕인 다. 이상스런 표정이다.

『훌륭한 무관이 되더라도 이러한 대궐같은 집은 한번 보아 두어도 나중에 참고가 될지도 모르지. 더군다나 옛 백제땅 부여에서도 유명하다는 도편수를 초청해서 건립 하는 집이니까 한번쯤 구경해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이 어른의 말씀대로 꼭 뒤늦게라도 와 주게』

『예-. 꼭 찾아 가겠습니다. 그 훌륭한 집을 한번 보겠습니다. 어른들께서는 먼저 떠나시도록 하시지요.』

노인들의 권유에 원덕랑은 그만 약속을 하고 말았다. 사실은 도편수가 옛 백제땅에 서 왔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옷을 말리고 마을로 향하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매력도 없는 일이었지만 꼭 권유에서만 가기로 약속 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첫째는 호기심이다. 이 부근에 도 하고많은 목수가 있고 도편수가 있을텐데 하필이면 옛 백제땅 먼데서 도편수가 와 야 했냐는 점이다.

두번째는 왠지 모르게 풍채좋은 노인의 태도였다.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말을 남긴채 시간에 쫓기어 떠나면서도 꼭 만나기를 원하는 눈치이다. 뭣인가 필연코 좋은 계시가 있을 것만 같은 육감이 들었다.

동네에 들어서자 중앙에 새로 짓는 높다란 건축물이 우선 시야를 가로 막았다. 저절로 감탄사가 뛰쳐 나왔다. 정말 처음 보는 집이다. 노인네들의 말은 허가 아니었다. 아름드리 나무들을 얽어 놓은 품은 장엄한 광경을 넘어서 사람의 힘으로 저렇게 할 수 가 있을까? 마치 신선들의 짓으로만 보여 신비스럽게 여겨졌다.

원덕랑은 넋을 잃고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바라보며 경탄을 하고 있을 무렵

『도련님. 저기 샌님들께서 빨리 안으로 들어 오시라는 분부이십니다요.』

언제 왔는지 하인 하나가 허리를 굽실하고 앞에 대령하고 있었다.

『응. 그래.』

말고삐를 하인에게 넘겨주고 바로 최부자집으로 안내 되었다.

『어서 오게. 도령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아까 그 두 노인은 반색을 하고 자리를 권하고 주인에게 인사를 시켰다. 막 주식이 끝났음인지 방안 손님들은 얼굴이 불그스름해져 있었다. 조금 후에 새로 밥상이 차려 져 왔다.

『찬도 변변치 못하네만 많이 들도록 하게나. 원도령이라고 했지? 자 어서 들게 나.』

아닌게 아니라 부호다운 점이 있었다. 늠름한 태도로 후한 선심을 빼놓지 않았다.

『예-. 잘 먹겠습니다.』

시장한터에 늦은 점심을 아주 감식을 했다. 원덕랑은 점심을 먹으면서도 유심히 부여땅에서 왔다는 도편수 서씨(徐氏)를 눈여겨 보았다. 채구도 거구인데다 키도 건장하고 장사의 골격이다. 굳건한 자세로 빈틈이 없어 보였다. 거기다 흥안백발(紅顔龐髮)에 탐스럽게 수염이 나부끼고 있어 사람을 따르게 하는 호인형이었다.

『자-. 젊은이의 식사도 끝나고 이제 일을 시작하여 봅시다.』

원덕랑의 식사가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 최노인은 서둘렀다.

이윽고 산 더미처럼 쌓여있던 곱게 다듬어진 재목들이 하나 둘 서씨 도편수의 지시에 의해 차근차근 날라져 가고 집의 형태가 점점 되어 간다. 원덕랑의 눈에는 모두가 신기롭기만 하다. 해가 저물어 가는줄도 모르고 그저 멍청 하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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