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부통령 함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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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부통령 함태영

3대부통령 함태영
  • 분야 : 역사/근현대,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정당리
  • 시대 : 근대/근대, 현대/현대

3대 부통령을 지낸 함태영은 한말의 명법관이요, 3.1운동을 막후에서 주도한 인물입니다. 기독교 교직자로서 평생 우리나라 기독교 발전에 헌신해 왔습니다.

송암 함태영은 풍운의 한말, 대내외적으로 어수선한 1873년 김제시 진봉면 정당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일대에는 강릉함씨 일족이 3백여년 전부터 자리를 잡고 터를 일구어 왔습니다. 함씨일가는 남의 논밭을 얻어 경작하는 처지여서 그렇게 윤택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재주가 있어 부친 함우택은 남의 집에 서당을 차려놓고 훈장을 하였고 작명 관상 풍수에도 능하였다고 합니다.

김제 만경일대에서는 함학자나 함풍수 함지사라 불렀고 50여살에 전라좌수영 도시무과에 합격한 후에는 함의관이라고 불렀습니다. 함태영은 1889년 16살 때 부친이 벼슬길에 올라 서울로 떠날 때 같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나중에 통정의관과 함께 한성부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는 문호개방과 동학혁명 등 갈수록 갈피를 못잡아 가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도 사숙을 전전하면서 면학에 힘을 기울여 신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895년에 함태영은 한국최초의 근대식 사법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였습니다. 이 법관 양성소는 대한제국 조정에 의해 세워진 법관양성 전문기관으로 서양의 사법제도를 이 땅에 첫 도입한 것입니다. 그는 6개월 과정의 이 양성소를 수석으로 수료하고 22살에 법관이 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 때 같이 입학한 사람중에는 이준열사가 있었습니다.

이듬해 함태영은 3월 한성지방재판소 검사시보로 임명돼 처음으로 법관생활을 하게되었습니다. 이로부터 1910년까지 경기재판소 판사, 한성부재판소 검사, 고등재판소 검사, 평리원검사, 법부 법률기초위원, 대심원판사 등 다채로운 경력을 쌓게 됩니다. 그러나 불의를 응징하는 강직한 성격으로 인해 몇차례 면직의 고비를 겪어야 했습니다.

1919년 3.1운동을 주도 민족대표 48인의 한사람으로서 만세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1921년 평양신학교입학 1923년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을 역임, 1933년 조선기독교 연합공의 회장을, 1949년 제2대 심계원장으로 등용, 그 뒤 1950년 한국신학대학장을 역임했습니다. 1952년 국회에서 개정 헌법을 공포하고 선거를 실시 제2대 대통령에 이승만이 당선되었고, 제 3대부통령에 함태영이 당선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62년 건국공로 훈장 단장을 수여하였습니다. 그리고, 1964년 10월 24일 94세로 파란과 영예의 한평생을 마치고 영면하였으며 정부에서는 국민장으로 예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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