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자 강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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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자 강원기(康元紀)

성리학자 강원기(康元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강원기는 신천강씨로 고려시대에 삼중대광 도첨의 우정승을 지낸 숙재의 증손이요, 대광보국 승록대부 상산백인 서의 손자이며, 찬성사인 아버지 윤의 아들로 황해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서 경술에 능하고 학력이 깊었으며, 작고 적은 일에는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행동에 규범이 있고, 친구를 깨끗이 대하며 명예와 이익을 멀리하였습니다. 그는 야은 길재,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경전을 읽어 그 뜻을 밝히며 갈고 닦는 한편 거의 끊겨가는 학문을 일으켜 세워 우리나라의 유풍을 크게 진작시켰습니다.

그는 덕과 인을 쌓을 때는 반드시 조상과 연계하여 술회되는 도리를 생각하고 충신의 언행을 할 때에는 정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선조의 유훈을 계승하고 진실해야 한다고 자제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두릉(만경의 옛이름)에 현인들이 청수염결하라는 글귀가 있음에 그 뜻을 따라서 이 곳에 왔습니다. 와서보니 구름에 밭을 갈고, 밝은 달 아래 낚시질하는 좋은 곳이라 벼슬을 그만두고 늘그막을 보낼 때 이곳에 집을 짓고 봉호처사(鳳湖處士)라는 현판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호수의 남쪽과 두곡의 서쪽에는 별도로 영락와(永樂窩)라는 집을 지어 예기와 주역을 강의하였습니다.

강원기는 벼슬을 그만두고 옛 만경현(진봉면 심포리)에 정착하였는데 고려 때부터 삼폐라하여 백성들이 큰 곤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첫째 봉수대의 문제요, 둘째는 공무라 하여 매년 300필의 말을 길러 나라에 바치는 문제요, 셋째는 공려라 하여 매년 6,000편의 숫돌을 만들어 나라에 바쳐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세가지가 모두 진봉면 심포리에 있었기 때문에 이 곳 주민들은 연중 쉴새없이 노역과 재정의 부담을 안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고충을 조선초 태조말엽에 그의 제자 이지로가 전라도 도백으로 부임하자 세가지 실정을 낱낱이 고해 어려움을 덜게 되었는데, 강원기가 심포리 심포마을에 들어오면서 이루어 지게되었습니다.
그 결과, 말 기르는 것은 제주도로, 봉수대는 계화도로, 숫돌은 태인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 뒤 지방사람들은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두곡서원을 세우고 배향하였습니다. 황해도에서 태어나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서 세상을 떠난 강원기는 "봉호집"이라는 유집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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