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
주요사건 및 법령
-
1901년
- 제주도-이재수의 난.
- 대한제국 금본위제 실시(신식화폐조례).
- 강일순, 증산교 창시.
-
1902년
- 서울 - 인천간 장거리 전화 개통.
- '협률사' 개설, <황성신문> 논설을 통해 국문을 널리 사용할 것을 주장.
- 독일인 에케르트 작곡의 국가제정.
- 제1차 하와이 이민 출발.
-
1903년
- 러시아 용암포 강점.
- 일본제국은행권 통용허가.
- 황성기독교 청년회 창립.
- YMCA발족, 한성전기회사에서 활동사진 상영.
-
1904년
- 한일의정서 조인-일제의 고문정치 시작.
- <대한매일신보>창간(베델).
- 원산-인천간 전화 개통.
- 경부선 완공.
- 제중원(세브란스 병원) 낙성식
-
1905년
- 을사조약.
- 경부철도개통.
- 가쓰라 - 태프트 밀약.
- 동학-천도교 개창.
- 미국인 길레트 야구 지도.
- 일본 독도 강점.
-
1906년
- 한국 통감부 설치-이토 히로부미 초대 통감으로 부임.
- 최익현 대마도에서 단식 순국.
- 이인직 『혈의누』.
- 통감부 기관지 <경성일보> 발간.
-
1907년
- 국채보상운동.
- 헤이그 밀사 사건-이준 열사 분사.
- 정미7조약.
- 고종 황제 퇴위.
- 의병 운동.
- 신민회 조직.
- 미국인 길레트 농구 지도.
-
1908년
- 전명운·장인환 의사 스티븐스 사살.
- 동양척식회사 설립.
- 연극장 '원각사' 건축-최초의 신극 <신세계> 공연.
- 최남선 첫 <소년> 종합월간지 창간.
- 사립학교령 반포(1910년초까지 100여개 학교 폐교).
- 학부 교과용 도서검정규정 등 공포.
- 구세군 선교사업.
- 경시청 <을지문덕전>, <이태리삼걸전>,<월남망국사> 등 서적 압수.
-
1909년
- 안중근 의사 의거.자세히보기
- 나철 <대종교> 창시.
안중근 의사 의거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일본의 전 총리이자 제1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의 재무상 블라디미르 코코프체프(Vladimir Kokovtsov)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 역에 도착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오전 9시 15분 하얼빈 역에 도착해 차내에서 약 20분 정도 코코프체프와 대화한 후, 그의 권유에 따라 명예 사령관으로서 러시아 수비병을 사열하기 위해 열차에서 내렸다.
그가 수행원의 안내를 받으며 러시아 군대 앞을 막 지나가는 순간, 안중근이 총 3발을 쏴 이토 히로부미를 명중시켰고 안중근은 혹시 이토 히로부미가 아닐 것을 대비해 다시 총 3발을 쏴 주위에 있던 일본 관리들을 쏘았다. 이때 수행원인 무로다(室田義文), 나카무라(中村是公) 등은 깜짝 놀라 급히 이토를 꽉 껴안아 보호했다.
이때 안중근은 죄 없는 사람을 잘못 쏘아 다치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여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그 다음 안중근은 러시아 말로 '코리아 우라(대한 독립 만세), 코리아 우라(대한 독립 만세)!' 외친 뒤 러시아 군대에게 잡혔다. 이토는 "당했다"라고 한마디하였다.
수행원은 우선 이토를 차내로 옮기고 이토가 좋아하는 브랜디를 한잔 따라 건네주었다.
이토는 이때 지팡이를 꼭 잡고 있어서 무로다가 이것을 빼내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이토히로부미는 잠시 신음하다가 저격 당한 지 30분 뒤인 오전 10시경에 사망했다.
- 담당부서 : 벽골제아리랑사업소
- 연락처 : 063-540-2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