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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교회

  • 주소전북 김제CITY 금산면 모악로 406
  • 이용시간연중무휴
  • 요금무료
  • 홈페이지 http://www.gimje.go.kr
  • 전화번호금산교회(063-548-4055)

금산교회

관광지 소개

1908년 4월에 세워진 금산교회는 미국 데이트선교사가 조덕삼(1867~1919), 이자익(1882~1959)등과 함께 지었다고 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던 시절 남녀에 대한 배려로 내부를 ㄱ자형태로 만들어 남쪽에는 남자석, 동쪽에는 여자석으로 나누어 예배를 보았으며 상량문 역시 남자석은 한문으로, 여자석은 한글로 성경구절을 써 놓았습니다. 금산교회는 뿌리깊은 남녀유별이란 과제를 ㄱ자형의 교회 평면을 차용한 건축해법으로 해결했다는 점이다. 금산교회는 보존상태가 양호 할 뿐만아니라 한국식과 서양식교회의 특징을 결합시켜 초기 교회건축의 한국적 토착화과정을 살필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건물로 판정받았다. 1997년 7월 18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36호로 지정되었다.
조세형 전 국회의원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조덕삼과 15세나 어린 마부 이자익과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조덕삼의 아버지인 조종인은 금광업을 하기위해 금이 많이 나온다는 이곳에 자리를 잡은 부자였고, 이자익은 경상도 남해군 출신으로 3살에 아버지를, 6살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친척집과 여기저기를 떠돌던 중에 조덕삼댁의 마부로 일하게 된다.
조덕삼의 아들인 조영호가 서당 훈장을 모시고 공부하던 것을 어깨너머로 귀동냥을 했던지 천자문을 술술 외우는 것을 들은 조덕삼은 그때부터 이자익을 아들과 똑같이 공부를 시키게 된다.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며 먼저 추대된 이자익 장로를 흔쾌히 승낙하여 집에서는 주인과 머슴으로, 교회에서는 장로와 신도로 서로에 대한 예의를 다하게 된다.(조덕삼이 승낙하지 않을 경우 분열할 수도 있었음. 서울의 다른 교회에서는 분열되기도 했음) 더 나아가 이자익에게 목사가 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주기까지 하여 초기 기독교에서 한국장로교 역사상 총회장을 3번이나 할 정도의 인물로 성장할 수 있게 한 조덕삼의 혜안에 더 큰 존경심을 보낸다.
주인보다 먼저 장로가 되었음에도 기꺼이 포용한 조덕삼의 믿음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초기 기독교의 성지로 오늘도 찾아오고 싶은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