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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영(朴漢永)

관리자|2019.01.08|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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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佛敎)근대화의 기수 박 한 영 (朴漢永)(1870 -1945)

1870(高宗 七年)에 김제에서 태어난 선생의 본명(本名)은 정호(鼎鎬)이고, 호는 석전(石顚)이라 하였는데 후일 당호(堂號)를 영호(映號)라 하였다.

그는 김제에서 출생은 하였으나 활동무대는 주로 전주였다소년시절에 유교 경전(儒敎 經典)을 배우다가 19세 때 전주 태조암(太祖庵)에서 출가(出家)하여 득도(得度)의 길에 나섰으며 타고난 명석함과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험난한 고행(苦行)으로 불가의 수업을 닦으면서 당대의 이름있는 스승들을 두루 찾아 편력했다. 백양사(白羊寺)의 환응(幻應) 스님으로부터 사교(四敎)를 배웠고, 선암사(仙岩寺)의 경운(敬雲) 스님에게서는 법()을 이어 받았다.
그런데 1896년 그의 나이 27세 되던 해에는 구암사(龜岩寺), 백양사(白羊寺), 법주사(法住寺), 화엄사(華嚴寺), 범어사(梵魚芽) 등에서 불법을 강의하는 등 이미 한국 불교의 사상적 지도자의 위치를 굳히고 나름대로의 일가견을 가졌었다. 그 후 그는 한국 불교의 대들보 구실을 하게 된 여러 제자를 기라성처럼 배출해냈다.

1911
년에는 한국 불교계에 파란이 한 차례 거세게 불어닥쳤는데, 이회광(李晦光)이 왜국의 불교인 조동종(曹洞宗)을 도입해 들여와 우리의  전래종파인 임제종(臨濟宗)을 하려고 획책하고 있었던 것을 선생은 불교계의 젊은 지도자인 오성월(吳惺月), 한용운(韓龍雲) 등과 더불어 임제종의 정통론을 주장하여 이를 저지시켰다.

선생이 한국 불교계의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다지게 된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는 조선불교월보(朝鮮佛敎月報 )사장과 불교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는데, 1929년에는 조선불교 교정에 취임하여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랐으며 서울의 개운사(開雲寺)에서 많은 불교도들을 육성하다가 말년을 정읍 내장사에서 보내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해박한 지식과 시()와 서예(書藝)에도 능하였으며 '석전시초(石顚詩抄), '석림수필(石林隨筆)', '석림초(石林抄)' 등을 저술하였다.
또한 그는 해동불보(海東佛報)의 사장이 되어 조선불교월보와 같이 한국불교 기관지 구실을 했는데, 자기 한 사람의 잡지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종횡무진의 집필과 편집을 동하여 불교사상의 전파와 불교계의 정화에 날카롭고 차원 높은 논설을 수백 편 발표하였다. 이렇게 하여 불교의 이론적 정립과 철학적 탐구에 깊이 있는 경지를 개척하였다.

선생의 눈에 비친 한국의 불교계는 개선의 여지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기회있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것을 주장하였다.

첫째로는 위선의 계율에 농락하지 말고 참된 계율을 확립하여야 하며, 둘째로는 '이타공덕(利他功德)', 즉 남을 이롭게 하는 일과 공공의 덕을 쌓도록 하며, 셋째로는 고루한 훈화에만 힘을 쓰지 말고 학교를 일으켜 지식을 보급하고 영재를 배출해야 하며, 넷째로는 이름 뿐인 포교를 지향하고 성심으로 포교하며, 다섯째로는 신도가 가져다 주는 것을 바라며 생활하지 말고 사업을 일으켜서 스스로 가람의 유지책을 강구해야 하며, 여섯째로는 백성들에 대한 자선사업 즉 병원, 고아원, 교육, 빈민구제 등을 실천하여 말로만의 구세제민(救世齊民)이라는 비웃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고식적인 한국불교 퇴폐된 민족종교에 새로운 활력을 주입하고 불교의 권위와 지존의 사상으로 민중을 교화하며 제도중생(濟度衆生)하려면 모든 승려는 그에 흡족한 지식과 덕망과 경론과 사상을 지녀야 한다고 질타하고 있다.
  (
슬프다. 우리 조선 승려로 말하면 과거 몇 백년동안에 천부한 인권을 잃어버린 결과로 인류사회의 일중 버린 물건이나 없는 대우를 받아 가장 분하고 가장 슬픈 마음이 항상 창자 가운데 쌓여 있었으며 밖으로는 뇌성벽력이 쉬임없이 핍박하고  안으로는 산과 바다같이 원한이 개일 때가 없이 팽창하였으니 이러한 경우에 이르러 무슨 열심과 무슨 용감으로 우리 승려가 학문을 장려하여 지식을 배양할 겨를이있었으리요 ‥‥‥ )

이 글은 누구의 글인지는 몰라도 그 정신은 선생의 것과 흡사한 것이라 하겠다.
선생은 '정선치문집설(精選緇門集說)'이라는 것을 편저하기도 하였는데, 그는 또 해동불보 제6호의 '불교전체와 비구일중(比丘一衆)'이라는 논설에서 불(), (), () 3()와 비구가 지녀야 할 정신자세를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
()이란 불시(佛施)로서 각자(覺者)란 뜻이다. 각이란 마음과 사람의 두 가지 면에서 요약할 수 있으며 각각 다른 뜻이 있다.  마음으로 요약하면 원래 중생심의 당체 즉 청정한 보구가 각이다.대숭기신론(大乘起信論)에 말하기를 소위 일체법(一切法)이 진여 평등(眞如 平等)하여 증감하지 않는 까닭이며, 여래장(如來藏)이 무량한 공덕을 구족하고 있는 까닭이며, 능히 일체(一切) 세간 출세간의 선인과(善因果)를 낳는 까닭이며, 일체논불이 본래 타고난 바인 까닭이며 일체보살이 모두 이 법을 타고 여래지에 도달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 "각자란 생사의 대목을 영원히 깨달은 까닭이며,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며 깨달음과 행함이 원만함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조사어록에 말하기를 "한 승이 임제(臨濟)에게 묻기를 진불(眞佛), 진법(眞法), 진도(眞道)가 무엇이나이까 하자 임제가 대답하기를 심() 청정(淸淨)이 불()이요, ()광명(光明)이 법이요, 처처무애정광(處處無碍淨光)이 도()라 하셨음이 바로 그 뜻을 말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선생은 1948 2 29일에 78세로 입적하였다. 그는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 가장 옳은 방향으로 불교 근대화의 길을 내다 볼 줄 알았던 사람이다. 그는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을 주장하였고 그 길에 앞장서서 헌신하다가 많은 사람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잃은 것이 적지 않았다. 그 결실에 대한 평가는 내리지 못할지 모르나 그의 성의, 통찰력, 불굴의 노력은 경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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