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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묵대사(雷默大師)

관리자|2019.01.08|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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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묵대사의 이름은 처영(處英)이다. 어려서 금산사 법상종(金山寺法相宗) 문하에 투신하여 득도(得度)하였다. 그때의 스승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후에 묘향산으로 서산 휴정선사(西山 休靜禪師)를 찾아 뵙고 조례의 선지(祥旨)를 전수하였다. 그래서 스님을 늘 서산스님의 문하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선조 25년(1592) 서산대사는 제자들에게 격문을 보내어 국난을 타개하도록 호소하였다. 서산스님은 8도16종 도총섭당 상격(八道十六宗 都摠攝堂上格)에 임명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해 9월 서산스님의 문도들은 곳곳에서 승병을 규합하여 궐기하였다
.

사명당 송운 유정(四溟堂 松雲 樵政)은 7백명의 승병을 금산사 유점사(楡岾寺)에서 일으켰고 영주대사(靈主大師)는 중봉 조헌(重峰 趙憲)과 함께 금산(錦山)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그때 뇌묵스님은 호남의 금산사를 중심으로 승병 일천 여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하였다. 뇌묵당 처영은 호동(湖東) 승군의 총수로서 곳곳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호남의 명찰 화엄사(華嚴寺)·대흥사(大興寺)·백양사(白羊寺)·내장사(內藏寺) 등의 승려들은 처영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항쟁을 계속하였다. 드디어 조정에서는 처영의 공을 크게 치하하고 스님에게 총섭(摠攝)을 하사하였다가 후에는 국일도대선사부종수교보광혈랑뇌묵(國一都大禪師扶宗樹敎 葆光玄朗雷默)이라는 법호를 하사하였다
.

전설에 의하면 처영의 힘이 천하장사였고, 권율과 함께 행주산성의 전투에도 참가하였다고 한다.
정조 18년(1794) 조정에서는 표충사(表忠祠)와 묘향산 수충사(酬忠祠)에 서산(西山) 사명(四溟)과 함께 처영의 진영(眞影)을 봉안토록 넣음으로써 필사(必死)의 각오를 하였던 것이다. 아들 충남(忠男)이 이로써 증험 삼아 시신(屍身)을 거두어 돌아와 장사지냈다.
선조조(宣祖朝)때에 호조참의(戶曹參議)의 증직이 내렸으며 김제 학당사(學堂祠)에 향사(享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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