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금산면

금산사미륵전

금산사미륵전
  • 지정번호 : 국보 제62호
  • 소 재 지 :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
  • 규모양식 : 정면3칸, 측면3칸 팔작지붕
  • 시 대 : 조선시대
  • 소 유 자 : 금산사
  • 지 정 일 : 1962년 12월 20일

대적광전의 오른편 앞쪽에 자리한 이 미륵전은 아주 독특한 양식으로 건축된 건물입니다. 즉 외관상으로는 팔작지붕의 3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각 층간의 구별없이 통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의 형태를 보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층과 2층은 앞면 5칸, 옆면 4칸이며 3층은 앞면 3칸, 옆면 2칸입니다. 각 층의 처마는 겹처마이고, 공포(拱包)는 다포양식입니다. 기둥은 두리기등(圓注)인데 1층의 경우 모서리에 있는 4개는 민흘림형이고, 나머지는 두리기둥(둥근 기둥)입니다. 이층의 경우는 미륵전 내부에 세운 기둥과 1층의 기둥을 연결시킨 부분의 가운데서 기둥을 세웠고, 2층의 경우는 지면에서부터 여러개의 목재를 연결하여 세운 고주(高柱)를 바로 이 층 둘레의 기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처마를 받치는 활주는 비교적 가느다란 목제원주(木製圓柱)인데 2층과 3층의 것은 각각 그 아래층의 우주(隅柱) 윗부분 기와등에 세웠습니다. 초석은 막돌초석과 방형(方形) 초석을 혼합하여 사용하였으며 활주의 초석에 있어서는 기둥이 닿는 부분을 둥글게 돌출시켰습니다.
이 미륵전은 <삼국유사> 關東楓岳鉢淵藪石記 조에 의하면 신라 혜공왕 2년(766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후 조선 인조 13년(1635년)에 수문대사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 병화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였습니다. 영조 24년(1748년)에는 금파대사 그리고 1938년에는 성 열대사가 각각 이를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미륵전의 각층에는 각기 다른명칭의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그리고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 이라는 현판이 그것입니다. 또한 이 전(殿)은 산호전 장육전으로 불립니다.

이와 같은 명칭들은 모두 미륵전과 관련이 있는것인 바 통일신라시대부터 미륵보존을 이 절에 봉안한데서 연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이 미륵전 안에는 미륵 3존 입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세웠을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보처상(補處像) 없이 독존불(獨尊佛)만을 모시었는데, 이는 주조(鑄造)(금속을 녹여서 만듦)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조선조에 병난으로 소실(燒失)"’되자 인조 5 년(1627년)에 수문대사가 3존불(三尊佛)을 소조(型造)하여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이 중 주불은 1934년 3월 9일에 실화로 소실되자, 당시의 주지인 황성열대사가 1938년에 이를 다시 소성(型成)하였습니다. 이들 불상의 높이는 중앙 본존(本尊)이 11.82m, 좌우 보처불(補處佛)은 각각 8.8m입니다. 이 미륵전은 1988년부터 완전 해체하여 복원하기 시작하여 5년 후인 1993년 봄까지 완전 복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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