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진봉면

독립투사 곽경렬

독립투사 곽경렬

  • 분야 : 역사/근현대,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 시대 : 근대/근대

독립투사 곽경렬은 1901년 김제시 진봉면 남상에서 3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15년 15세의 어린 나이로 박상진을 총사령관으로 결성된 대한광복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는 대한광복회복단의 인사들을 통합하여 대구에서 조직한 혁명단체로서 전국적인 조직과 더불어 만주의 독립군 기지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1910년대 최대의 국내항일조직이었습니다.

대한광복회는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 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에 혁명기지를 확보한 후 적시에 폭동으로 독립을 쟁취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자금 수합이 친일부호들의 외면으로 예정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혁명계획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자, 대한광복회는 국민적 각성과 함께 식민성 지주들에 대한 응징으로 친일 부호를 처단하는 활동을 펴나갔습니다.

그리하여 경북, 전남, 충남의 세 지역에서 악성부호들을 처단했는데 이 때 그는 한훈, 유장렬 등과 함께 양재학, 서도현 등 전남지역의 친일 부호 처단 활동에 참가하였으며 일본 헌병 분견소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그 일경과 주구배 숙청에 고, 멀리 금강산에 들어가 김동평과 운용중 등 부일분자를 사살하였습니다.
그 후 몸을 피하여 일시 만주로 망명하였던 것인데 그 때 권총 1정을 휴대한 채 향리로 돌아왔습니다. 1919년 3월 민족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으므로 일시 거사를 중지하고 있다가 동년 12월 11일 전북 옥구군 대야면 소산리 김영순의 집으로 들어가 상해임시정부로 보낸 군자금으로 당시 화폐 27월을 받아 연락원에게 전송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발각되어 1924년 체포당하여 2년여의 모진 고문 끝에 1926년 전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의 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1929년 4월 1일 전주감옥에서 출옥한 후로는 일제의 고문에 못이겨 29세의 나이에 반병신이 되어 재향영농에 치중하다 김제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다가 1968년 6월 향년 68세로 별세하였습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82년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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