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체험을 마치고

  • 정보통신담당관실
  • 200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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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은 찜통이다. 들끓어 오르는 도시의 한낮, 내려 꽂히는 직사광 아래서 아스팔트는 곧 녹아 내릴 것 같다. 오가는 차들도 지쳐 속력 내지 못하는 도심은 요며칠 축처져 납작 엎드려 있는 중이다.

도시를 빠져나오는 늦은 오후, 그제서야 열기가 수그러드는 듯 도시의 풍경은 드러났다.

전주 삼천동에서 독배를 거쳐 금산사로 난 길은 눈이 시원한 초록색 만으로도 서늘하다.

산길은 정직하다. 돌고 돌아 오르면 어김 없이 다시 돌고 돌아 내려가야 한다. 세상의 이치 또한 그런 것이 아닌가.

7월 22일 금산사 산사 체험 취재길은 설레였다. 체험 프로그램은 24일까지 이어지는 2박3일의 일정이다.

‘뜰앞의 잣나무’라. 금산사 산사체험이 중생들에게 던지는 화두다. 간절히 들면 된다. 절대로 답을 구하지 말라한다.

산문은 열려있다. 늘 열려있었을 터이지만 오늘 산문을 넘는 의미는 더 특별하다. 아직 가시지 못한 해가 산중에서 머뭇거린다. 고요한 산사의 일주문 문턱을 넘어서니 마음가짐이 경건해진다.

공양시간. 공양간은 꽉 찼다. 산사체험을 위해 온 23기 체험생들이다. 아차! 공양간에 들어설때 합장하고 반배하라했는데 놓쳐버렸다. 길게 늘어선 줄 맨 뒤에 겸손한 스님이 섰다. ‘스님! 앞으로 가시지요.’ 보살이 소매를 끌었지만 스님은 낮게 웃으셨다.

맛있는 산채 비빔밥. 절집에서는 한톨의 밥알도 소중해지는 법, 훌훌 물로 씻어가며 깨끗이 비웠다. 설겆이는 이미 자원봉사 나선 체험자들로 자리가 비좁다.

대적광전에서 갖는 저녁예불 시간. 범종 울리는 산사는 더 경건하다. 절은 삼보에 대한 예경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의미한다. 동시에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의 수행 방법이기도 하다. 가부좌는 반가부좌만으로도 어렵다. 허리를 꼿꼿이 펴야만 자세를 바로 잡을 수 있다. 몸의 자세가 마음가짐과 일치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스님과의 대화, ‘즉문즉설’ 시간이다. 밖은 어두워지고 있다. 달려드는 모기를 피할 재간이 없다. ‘잡을까 물릴까’ 갈등을 아셨을까. 인상 좋은 덕림스님이 일러주시는 ‘모기 이기는 법’은 퇴로 없는 고행(?)이다. “산모기는 물려도 상관없으니 그냥 물리고 침을 바르라”신다.

“스님은 어떻게 화를 자제하시는지요.”수행자가 여쭈었다. “화를 자제하는 법은 없다”신다. 그러나 ‘화를 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고 다시 물으신다.

“화가 나는 것은 ‘나’를 내세우기 때문, 그것이 바로 탐욕심이다. 본래 ‘나’는 없다. 너 자신도 너의 것이 아니다.” 스님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 화를 없애는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수행자들의 마음가짐이 무거워짐을 아셨는지 행자시절 일화 한토막으로 스님은 금새 분위기를 반전 시키신다. 불교의 계율, 용화세계와 사바세계, 불교의 역사까지 스님의 즉답이 막힘없이 이어지는 사이, 날은 칠흙처럼 어두워졌다. 어디서나 뒤늦게 깨닫는 중생이 있는 법. 마지막 즉문을 구한다. “모든 욕은 어떻게 금하십니까” “수행으로 하지요. 수행만이 욕을 자를 수 있어요. 수행은 곧 버리는 것이지요. 버림으로써 얻는 것, 그것이 수행의 기본입니다.”

밤 9시. 도시는 아직도 어수선할 시간이지만 산사는 적막하다. 물소리, 개구리 울음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가 산사를 더 적막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됐다. 도시를 탈출해온 수행자들은 잠자리에 들었을까.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스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세상이 멀어졌다.

새벽 4시. 대적광전 새벽예불을 마친 수행자들이 다시 보제루에 모였다. 대명스님의 참선시간. 참선은 스스로 참회하는 법. 스님은 “선이 내가 부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신다.

‘내가 부처일 수 있는가.’ 불경스럽다. 그러나 스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부처일 수 없는 것은 자기 미망에 빠져서다. 우리 모두는 진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셨다. 선을 통해 진리의 깨달음을 얻게되면 내가 곧 부처인 것을 볼 수 있다.”

스님의 죽비소리를 들으며 반가부좌, 좌선하는 동안 마음은 고요해졌다. 모두가 스님의 말씀 덕분이라. 이어지는 108염주 꿰기는 일상을 더 멀리 떨쳐내는 몰입의 과정이다. 1배에 염주알 하나씩 꿰는 과정은 한없이 자기를 낮추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1080배도 한다는데 50배도 안되어 옷은 땀으로 젖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발우공양. 두줄씩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수행자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침에 청소울력이며 사찰안내를 흥미진진하게 해주었던 원주스님은 단단히 이르신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청숫물을 다 먹게 됩니다.” 발우공양은 소리 나지 않게, 음식 씹는 입도 보이지 않게, 꼭 먹을만큼만 덜어서 빨리 먹어야 한다. 반찬은 서너가지, 단무지 한조각이 함께 주어진다. ‘반갑다 단무지’. 그런데 발우공양에서 단무지는 반찬이 아니란다. 발우에 붙은 찌꺼기를 닦아내는 중요한 역할이다. 마지막까지 깨끗이 헹구어낸 물과 단무지는 물론 마시고 먹어야 한다. 단무지 한조각이 전해준 깨달음(?)이 크다. 그것은 추억이 될수도 있고, 일상의 교훈이 될 수도 있다.

산사체험을 약식으로(?) 끝나고 돌아오는 길. 몸은 고되나 마음은 한껏 가볍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버리고 왔는가. 묻고 또 묻게 되는 시간. 이 작은 깨달음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산사가 다시 그리워지는 이유다.

프로그램 모집부터 진행·뒷마무리까지 손길 안닿는 곳 없어



금산사 산사체험자들이 맨 먼저 마주치는 \"사찰 사람\" 이 지덕거사(본명 강만곤, 36)다. 그는 낯선 체험을 부드럽게 연착륙시켜주는 ‘관제사’며, 체험자들을 종무소 앞에서 기다려 안내하는 ‘문지기’다. 체험자 모집에서부터 프로그램 진행과정, 뒷마무리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산사체험을 돌보는 기간 자신의 본업은 뒷전이다. 그는 금산사에서 산사체험을 처음 시작한 지난해 4월부터 1년3개월째 체험자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다.

그와 금산사의 인연은 10여년 전으로 올라간다. 대학시절(우석대 전산과) 학생운동으로 복역중 월주스님을 만났고, 7개월여 시봉생활을 했다. 당시 월주스님은 환경운동연합과 경실련, 공명선거운동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던 때로, 지덕은 월주의 그림자 역할을 했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덕은 우스갯말로 스스로를 금산사에서 38번째 서열이라고 한다. 스님을 포함 38명의 사찰 식솔중 막내라고 자신을 낮춘다. 산사체험자들을 위해 궂은 일을 도맡고 있는 그는 또 자신의 일 자체를 수행하는 과정으로 여긴다. 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님들과의 갈등이 없지 않고, 체험자들에 대한 서비스도 고된 일이지만 자신을 닦는 일로 받아들인다.

이번 산사체험에는 자신의 어머니(67)도 참가시켰다. 2달전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그는 어머니가 매일밤 한바탕 울고서야 잠을 청하고, 항상 맥이 풀려있는 모습을 곁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다 산사체험을 권했다.

산사체험을 1회성 행사로 끝내지 않고 인연을 이어가게 하는 일에도 지덕은 열심이다.

“산사체험에서 비우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으며,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그가 산사 체험자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정보제공 : 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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