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장고 제작 50년 \"장인 외길\"

  • 정보통신담당관실
  • 2005.08.02
  • 354
강옹에게는 그래서 해마다 돌아오는 광복절이 남다르게 느껴지고, 또한 고향을 그리워하고 우리의 것을 그리워했던 강옹이 고향인 김제에서 전통 악기인 장고를 만드는데 한평생을 바치게 하는 이유가 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웃에서 장고 제작을 하던 스승 백봉남(작고)씨와 선운필(작고)씨를 눈여겨보고 톱질 등을 도우며 조금씩 가까워졌고 손재주가 남다른 강옹을 눈여겨본 스승들의 눈에 들어 장고 제작 기술을 배우게 된다.

곁에서 스승들을 도우며 장고 제작 기술을 배우던 강옹은 작업 과정을 지켜 보면서 일일이 끌과 망치로 나무를 깎아내리는 일이 과학적이지 못함을 느끼고 기계 장치를 발명해야겠다는 생각에 작업에 몰두한다.

그 당시 흔치 않았던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워 경기도 일대 미군 부대에 근무한 적이 있고 기계제작 등의 남다른 손재주를 지닌 강씨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자동차 기어 장치와 벨트, 모터 등을 이용해 반 자동식 장고통 깎는 기계를 만드는데 성공 77년 특허청으로부터 ‘장고통 내면제작기’라는 이름의 실용신안 특허(제355호)를 얻었다.

1년이 넘게 걸린 각고 끝에 만들어 낸 ‘장고통 내면제작기’의 발명으로 쇠 불리는 일에서부터 틀만드는 일 까지 모든 공정을 혼자의 힘으로 하게 되는 등 장고 제작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 오게 됐다.

이 후 강옹은 손수 제작한 ‘장고통내면제작기’를 짊어지고 전국을 누비며 장고를 만들어 현지에서 판매하는 등 우리 것을 전국에 알리는데 앞장섰으며 지금까지 그가 재료로 소비한 오동 나무의 숫자만해도 수십만 그루의 이르는 등 장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지금이야 피아노, 바이올린 등의 서양 악기에 밀려 우리의 전통 악기인 장고의 인기가 시들하지만 40년전만해도 전국 어디를 가도 북치고 장고치며 농악을 즐기던 시절이라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장고의 인기는 대단했단다.

그때 하루에 5개 정도를 만들어 판매했다고 하니 당시 장고에 대한 인기를 미루어 짐작할만하다.

이 후 장고의 대한 인기가 시들해지자 주문 생산만을 했지만 전국의 명성이 알려져 서울.경기와 경상도 지방에서 주문이 쇄도 서울의 전통 악기점에는 20여년을 계속해서 납품해 오고 있다.

지난 1992년에는 제15회 공예품 경진대회에 참가 입선을 하며 도지사 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93년에는 전북공예인협회로부터 공로패를 받았으며 1994년과 1995년 연이어 공예품전시대회에서 입선하는 등 그 동안의 쌓은 노력의 결실이 맺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가 1997년 악기장 보유자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12-3호)로 선정되며 진정한 그의 장인 정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전라북도 전통 공예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더 많은 명성을 쌓아갔다.

그동안에는 그가 만든 작품이 전국의 유통되며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찍혀 유통되는 것을 안타까워 했지만 악기장으로 선정되며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낙관이 찍혀 팔려나가기 시작 악기장으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지평선 축제기간 무형문화재 공개 행사에서는 전국의 관광객들 앞에서 장고 만드는 과정을 선보이며 전통 문화에 대한 자긍심 고취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50년이 넘는 세월을 장고 만들기에 온 힘을 쏟아온 외길 인생으로 신풍장고라 불리는 강신 하옹의 솜씨는 전국에 널리 알려져 옛 것을 그리워하는 기성 세대와, 옛 것을 배워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신풍 장고는 장고통의 재료인 오동나무 속을 파내고 겉 모양새를 맵시 나게 다듬은 다음 오른쪽 마구리에는 말 가죽을 대어 붙이고 왼쪽 마구리에는 쇠가죽을 대어 만든 그의 장고는 소리가 깊고 독특한 음색을 지닌 강신하 옹의 치밀한 정성과 영혼이 담겨 있는 명품이다.
“악기장으로 선정되며 나의 작품의 나 자신의 이름이 찍혀 전국의 유통되기 시작했을 때가 가장 보람되고 기뻤습니다.”
악기장으로 선정되기 전에는 많은 자신의 작품이 전국에 팔려나가기는 했어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유통된 것이 가장 가슴이 아팠다는 강신하옹
“장고의 대한 인기가 시들해지며 배우려는 이들이 없어 막내아들(강광석)이 기술을 전수받아 장고를 만들고 있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언제까지 전통의 맥이 이어질지....”
“잘 나갈 때는 하루에 5개를 만들어도 부족했는데 지금은 시나브로 1개씩 만들어도 재고로 창고에 쌓아놓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매년 8월이면 광복절을 기념, 집집마다 태극기도 달고 각 마을에서는 신나게 농악 놀이를 하며 잔치를 연다. 이번 광복절에는 진정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어려움을 극복하며 외롭게 땀흘리는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의 고마움과 함께 우리의 것을 한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보제공 : 전북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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