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사진속 서러운 피탈의 역사....

  • 정보통신담당관실
  • 2005.08.10
  • 361
역사는 말한다.
일제강점기 쌀 한톨 한톨에 실려간
우리 민족의 배고픔과 설움.
그리고 노역의 울분을....

일제 강점기 군산항은
쌀 수탈의 대표적인 전초기지였다.
당시 최대 곡창지대였던 호남평야와
논산평야의 쌀이
익산, 김제, 정읍, 전주, 논산 등지에 모아져
전-군가도를 통해 군산항에 쌓였다가 일본으로 수송됐다.
1920년대 일제의 식민지 수탈 경제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산미증식계획과 함께
쌀 수탈이 강화됐고
군산항이 그 창구 역할을 했다.

1926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쌀 수출량 544만석 중 25%인
137만3,000석이 군산항으로 나갔으며,
1934년에는 군산항의 쌀 수출량이 200만석을 넘어섰다.
일제는 1930년대 들어서는 우리나라 전체 쌀 생산량 (연평균 1,500만석)
의 절반 이상을 수탈해 본토로 들여보냈다.
당시 쌀 소비량은 일본인이
1인당 1년 평균 1석2두(1斗: 14.4kg)인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5두에 그쳐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끼니를 이어가야만 했다하니 그 사정과 형편이 짐작할만하다.

세월이 흘러 광복 60주년을 맞은 오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전기호)가
지난 2일 전국에서 4만2,458건의 신고서를 접수했는데
이중 전북 노무자 동원 피해신고가 5,793건으로 가장 많았던
이유 또한 1930~40년대 당시 전북이 곡창지대로 인구가 많았고
군산항을 통한 일제의 징용과 쌀 수탈이 심했기 때문이다.
피 말랐던 역사의 한페이지가 아련히 흐려져가는 오늘,
사진으로 더듬어본 그 기억과 현장이 큰 교훈이다.
전북민예총 사진분과위원회가 11일부터 덕진공원에서
광복 60주년 기념 올 민족예술제와 전북문화제 사진전에
도내지역 일제 쌀 수탈 현장 미공개 사진을 풀어놓는다.
당시의 생생한 현장이 잡혔다.

정보제공 : 새전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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