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진(趙鳳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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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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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가이며 효자 조 봉 진(趙鳳振) (1728년 ∼ 1793)

* 자 : 군거 (君擧)
* 호 : 백암 (白巖)
* 출생지 : 김제시 교동
 
선생은 한양 조씨(漢陽 趙氏)로 개국공신이며 이조판서인 충정공 인옥의 17세 손이며, 숭록대부 중추부판사를 지낸 관(貫)의 16세 손이고 통덕랑 선(瑄)의 11세 손으로, 아버지 정환(楨桓)과 어머니 진주 하씨 사이에서 2남으로 1728년(영조 4년 戊申)에 김제시 교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비단결 같이 곱게 내려온 이름있는 집안의 자손답게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며 총명하고 대쪽처럼 곧은데다가, 일찍부터 엄한 아버지 밑에서 글을 배우고 학덕을 쌓아 문장과 문필에 능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더 배우고 싶은 욕심으로 이 지방에서 도학(道學)의 삼대선생(三代先生)으로 존경받던 문경공 성담 송환기, 의암 정윤교, 이재 황공윤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당사, 경사, 주역 등은 물론 문장과 문필, 제자백가서 까지 두루 익히어 막힘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선생은 이름난 효자이기도 하였다. 선생은 어머니가 병을 얻어 몸져 눕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널리 의원을 불러 치료하게 하였으나 병이 깊어 끝내 세상을 떠나자, 초종장례삼상(初終葬禮三喪)은 물론 3년동안 상복을 벗어 본 일이나 고기와 생선을 먹어 본 일이 없었으며, 아침 저녁으로 상식(上食)의 곡성(哭聲)을 끊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소를 보살피며 애통해 하여 보는 사람을 감동시켰다.
그 후로도 선생은 배움과 덕행에 더욱 힘을 쏟아 많은 사람의 스승으로 존경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필습서(指筆習書)로 글을 써 문집 3권을 남겼는데, 1권은 제문(祭文), 간서(簡書), 소상(疏上), 상장(上狀) 등으로 구분하였고, 2권은 송 성담, 정 외암, 황 이제 등 여러 선생들과 문답식으로 주고받던 글과 시를 적었으며, 3권은 유산록(遊山錄)으로 여산, 은진, 강경, 공주, 금강을 거쳐 충주, 단양, 금강산, 장안사로 유람하던 일, 또 남원, 운봉, 함양, 거창, 가야 해인사를 거쳐 지리산까지 걸어서 여행하던 자취를 이정(豊程), 침식(寢食), 지형, 인심, 풍물, 유적, 사적 등을 곁들여 일기식으로 쓴 책이다.

통훈대부 종삼품 군자감정까지 올랐던 선생은 전주 유명기의 따님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고 글과 글씨를 벗삼아 만년을 보내다 1793년(正祖 17년 癸丑)에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제시 서암동에 사는 선생의 6세손 조기웅이 문집과 기타 필첩 등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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