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식(崔 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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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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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면 동산히 둔산(屯山) 부락에는 효자 최 식 (崔湜) 의 정려가 있다.
공은 호를 매촌(梅村) 이라 하고 벼슬이 삼품(三品) 예빈사(禮寶寺) 종사랑(從仕郎) 에 이르렀다. 본관은 전주(全州) 로 유명한 만육(晩六) 최 양(崔瀁) 의 종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점잖은 것이 성인같은 인품이었다. 집안의 공덕과 전통을 이어받아 경건한 마음으로 가업을 보살피는데 효도와 우애가 지극하였다. 부모를 모시는 데는 항상 환한 얼굴과 부드러운 말씨로 대하였고 또 부모가 위독 하였을 때 자기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서 목숨을 소생하게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효성에도 한달 후 부친이 돌아가시자 그 애통함이 주위 사람이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모든 장례 절차에 하나하나 자신이 삼가고 경건한 마음으로 치러 나가는데 이때 공의 나이 열 세살밖에 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노성(老成) 한 군자라 할지라도 저보다는 못할 것이라 혀를 내둘렀다.
나중에 조정에서 3품벼슬을 내리고 정려를 짓게 하였고 쌍계사(雙溪祠)에 주벽(主壁)으로 모시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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