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상(朴佑相)

  • 관리자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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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박 우 상(朴佑相) (1875년 ∼ 1944년)
 
* :송은 (松隱)
* 출생지 : 안경면 송상리


김제군 만경면 송상리 큰 길가에 가면 1936년 주민들이 세운 중추원(中追院) 의관(議官)을 지냈던 선생의 「시혜불망비(施惠不忘卑)」가서 있는데, 선생은 온후하고 효성이 지극 하였으며 친구는 믿음으로 사귀고, 정이 많아 불우한 사람을 보면 가리지 않고 도움을 주었다.선생의 업적을 연대별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904년 8월 중추원 의관 주임관 6등(9품)으로 한성 신보를 발행하였고, 1914년 3월부터 1920년 4월까지 3차례에 걸쳐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 4,340원 헌납했으며, 1925년부터 10년동안 만경 행교(지금의 典校는 행교의 주관자임) 직원을 역임하면서 자비(自費)로 개축했다
.
1928년 극심한 흉작으로 세금을 납부할 수 없던 극빈자의 세금을 전액 납부(松上, 官上, 長山, 小土, 가실마을)하기도 했고, 1929년 극빈자의 농비(農費)를 부담하였으며, 1936년 구라장(仇羅場)을 개답(開畓)하여 영세민에게 나누어 주어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기도 하는 등 없는 사람을

위해 일을 했다. 1939년에도 흉년으로 세금조차 낼 수 없을 만큼 곤란한 송상, 관상, 장산, 소토, 가실 사람들의 세금과 농비를 부담하기도 했다.

1940년 상리 진흥회를 창립하고 상리를 모범마을로 육성하여 당시 군수였던 조동민(趙東敏)으로부터 표창을 받게 하는 등 많은 업적을 쌓아 1932년 석교, 가실, 관상리 사람들이 세운 적선비(積善) 3개와 1936년 도움을 받았던 마을 사람들이 세운 시혜불망비(施惠不忘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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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1944년 10월 25일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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