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식(趙在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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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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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선구자로 덕행 뛰어난 조 재 식 (趙在軾)

1898 10 1일에서 1957 5 13일 사이에 살았던 선생은 경리관(經理官) 면섭(冕燮) 3형제중 큰아들로 자()는 화숙(和叔)이요 호()는 춘강(春江)이며 본관(本貫)은 김제 (金堤)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며 형제 동기간에도 우애하였다. 망령된 말을 하지 않았으며 버릇 장난을 하지않아 동네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였다. 항상 사람을 대할 때마다 한결같이 성의(誠意)와 예의 (禮儀)로써 대하고 사생활은 한치도 예의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1948
년 해방후의 일이다. 본군이 농촌 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농업학교가 없음을 통탄하고 사재 (私財) 전답 5만여평을 설립기금으로 희사하였다. 오직 농군(農郡) 김제에 농업 학교를 설립코자 유지 회의에서 기성회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기성회 임원과 일심동체가 되어 노력끝에 현 김제 농업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선생은 부모님 말씀이 좋고 나쁘고 걱정되는 말과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 선생은 군민에게도 덕행과 예절로써 대접하였으며 손님이 간다 하면 문밖까지 전송하는 예도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1957
5 13일 세상을 마치니 인근에서 입을 모아 후덕가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효자라고 하였고 사후에는 장례를 두고도 학교장이다 사회장이다 하여 서로 주장할 정도였으나 결국 학교장으로 농업학교 교정에서 엄숙히 거행하였다.

지금 선생의 묘는 김제군 월촌면 반월치 당제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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