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돈(趙在敦)

  • 관리자
  • 2019.01.08
  • 1270
1881 2 13일부터 1942 12 12일 사이에 살았던 선생은 참봉(參奉) 흥섭(興燮)의 외아들로 자()는 경안(景安)이요 호()는 유천(瑜泉)이며 본관(本貫)은 김제(金堤) 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몸가짐이 단정해서 남의 귀감이 되었다. 효성도 지극하여 동네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였다.
항시 사람을 대할 때마다 한결같이 겸손하면서도 엄격하였다. 사생활은 한치도 소홀함이 없었다. 1942년 해방전 김제에는 남자중학교가 없었다. 그리하여 선생은 김제 중학교 기금으로 순창군(淳昌郡)내 소작농지 (전답) 66천평을 기성회에 희사하였다. 기성회에서는 이 기금을 기반으로 모금이 활발하여 남자중학교를 준공한 것이다. 선생은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생활이 어려운 당질(堂侄)들에게 학자금을 지급하기도 하고 전답도 분배하여 주기도하며 빈한한 동네 집에는 쌀도 주고 5일장 다음날에는 서말(三斗) 쌀밥을 지어 걸인에게 주기도 하였다.

1942
12 12일 세상을 마치니 인근에서는 입을모아 덕가(德家)라 말하는가 하면 또는 좋은 사람이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선생의 묘는 김제읍 교동리 사직단에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