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金炳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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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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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金堤) 백구면 사람으로 기독교(基督敎)인이다.

1919년 3월 5일의 군산(群山) 독립만세운동과 서울의 제2차 학생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당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醫學專門學校)학생으로서 2월 25일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이갑성(李甲成)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여 매를 전해 받고, 군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할 것을 권유받았다.

이에 그는 2월 26일 군산에 도착하여, 영명학교(永明學校) 교사인 박연세(朴淵世)의 집에서 이두열(李斗悅), 김수영(金洙榮), 고석주(高錫柱), 김윤실(金允實), 김인묵(金寅默), 이동욱(李東旭) 등과 만나 서울의 독립만세시위 계획을 전하고 군산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다시 3월 1일 박인세의 집에서 이두열, 김수영 등과 만나 독립선언서 1백여매를 전해 주고 주민들에게 배포하도록 하였다. 그의 이같은 활약으로 3월 5일 군산에서 대대적인 독립만세 시위가 전개될 수 있었다
.

군산에서의 독립만세 시위계획을 끝내고 상경한 그는 3월 5일 남대문 정거장 앞에서 학생대표인 강기덕(康基德), 김원벽(金元壁) 등과 태극기를 흔들며 수백명의 학생들을 지휘하면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1920년 2월 27일 경성 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기리어 1983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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