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립(朴正立)

  • 관리자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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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성장과정이나 기타 자상한 것은 알길이 없으나 본적은 충청북도 청주군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주소는 본군 봉남면 용신리로 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성장하였다고 전해진다.

선생은 1913년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의 모체기구인 광복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김 구 선생을 따라 상해로 건너가 대한 임시정부수립에 협력하고 청년외교단장에 피선되어 활동하였다
.

1918년에 선생은 임시정부의 자금조달차 사명을 걸머지고 귀국하여 지하활동을 계속하여 왔다
.
3·1운동 당시는 해내외(海內外) 애국지사들과 같이 서울 지방에서 항쟁하였고 그후로는 지폐기 구입 입수와 만주국 화폐를 인쇄하다가 놈들에게 피체되어 대구형무소에서 만 7년간 고역을 치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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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옥후에는 약 1년간 목포방면에서 포목행상으로 가장하고 있다가 또 다시 기회를 타 만주로 망령하려던 찰나 의주(義州)에서 일경의 마수에 걸려 3년형의 복역을 하는등 갖은 고난속에 그 많은 옥살이를 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끝내 독립운동에 몸 바친 애국지사로 추앙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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