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렬(郭京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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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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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투사 곽경렬은 1901년 김제군 진봉면 남상에서 곽덕수의 3남으로 태어났다.

1915 15세의 어린 나이로 박상진(朴尙鎭)을 총사령으로 하는 광복회의 일원이 되었는데, 이 활동 체계가 국외와 국내로 분리되면서부터 한훈, 유장렬을 따라 전라도일대 에서 활동하였다.

 선생은 한인 반역자를 수시로 그리고 어느곳에서나 처단하는 행형부(行刑部)의 요원으로 활동했으며 계속 한훈(韓焄)을 따라 일본 앞잡이들을 숙청하기에 전력을 다 하였는데 멀리 금강산으로 들어가 김동평(金東平)과 윤용중(尹龍重) 등 부일분자(附日分子) 들을 사살하였다. 그 후 몸을 피하여 일시 만주로 망명을 하였던 것인데, 그 때 권총 1정을 휴대한 채 향리로 돌아왔다
.

그 후 1919년 3월 민족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으므로 일시 거사를 중지하고 있다가 동년 12월 11일 전북 옥구군 대야면 소산리 김영순의 집으로 들어가 상해임시정부로 보낼 군자금으로 당시 화폐 27원을 받아 연락원에게 전송하였다. 이 사실이 발각되어 1924년 체포당하여 2년 여의 모진 고문 끝에 1926년 전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의 언도를 받게 되었다
.

1929년 4월 1일 전주 감옥에서 출옥한 후로는 일제의 고문에 못이겨 29세의 나이에 반병신이 되어 재향 영농에 치중하다 김제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다가 1968년 6월 향년 68세로 별세하였다
.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2년도에 건국포장을 수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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