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립(吳大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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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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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면 남포리(南浦里)에는 오대립(吳大立) 3형제의 충효문과 정려가 있다. 오공의 본관은 해주(海州) 이며 자는 여신(汝信) 호는 퇴암(退庵) 이다. 문과 호방(虎榜) 3형제가 함께 합격하였다. 공의 큰 아우 대익 (大益) 의 자는 여겸 (汝謙) 호는 묵헌(黑軒) 이고 둘째 아우 대진(大晉) 의 호는 야은(野隱) 이었다. 3형제는 같이 등과하여 맡형은 장령 (掌令) 을 거쳐 사옹원 봉사(奉事)의 자리에 있었고 둘째 대익은 선전관을 거쳐 훈련원 봉사, 셋째 대진도 강령을 지낸 뒤 봉사의 자리에 있었다. 세 형제는 광해군때에 벼슬을 하였는데 다같이 맡은바 직책을 충실히 하였고 인조반정 (仁祖反正) 때는 다시 인조를 모시게 되었다. 그때 인조초 갑자년에 큰 변란이 있어 인조는 충청도 공주로 피란을 가게 되었다. 이때 오공 3형제는 어가를 호위하고 공주까지 같이 가며 충성을 다하였다. 그 후 3형제는 모두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에 돌아와 한 집에 같이 살며 효성으로 부모를 공양하고 항시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지극한 정성을 다 하였다. 부친상을 마치고 3년 시묘를 하는데 초막 아래에 샘이 솟아나 3년 동안 맑은 물이 있더니 시묘를 마치고 나자 그 샘도 말라 버렸다 한다. 철종(哲宗)때에 이르러 충효의 정려를 세우도록 명령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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