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협(羅浹)

  • 관리자
  • 2019.01.08
  • 1660
도학(道學)의 귀재 나 협(羅浹)
 
* : 사우(去遇)
* 호 : 주은(酒隱
)
* 출생지 : 경기도 반송정(盤松亭
)

공의 자(字)는 사우(士遇)요, 호는 주은(酒隱)이며 천만(樂天萬)중우(仲佑)의 6세 손으로 경기도 반송정(盤松亭)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기품이 있고 용모가 단정했던 공은 남달리 총명하기까지 하여 세 살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율곡(栗谷) 이이(李珥) 문하에서 수학하고, 아울러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으로부터 학문과 덕을 쌓았다. 공은 1575년인 선조(宣祖) 8년에 성균관 생원(生員)에 급제하였다. 그 후 여러 번 벼슬이 올라 1607년(선조 40년)에는 남대지평(南臺持平)이 되어 임금께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릴 세 가지 방책을 상소하였는데, 첫째는 도학을 숭상함이 선비의 길이요(崇道學 以正士趙), 둘째는 항상 절약하고 검소함을 나라에 널리 펴며(尙節儉 以 國用), 셋째는 어진 인재들을 많이 등용하여 요직을 줘야 한다(收賢才以供天職)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선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다가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光海君)이 왕위에 오른 지 9년이 되던 1617년 대북(大北)의 정인 홍(鄭仁弘)이 권력을 손아귀에 넣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출하려는 음모를 꾸미고서 공을 설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공은 끝내 굽힘이 없이 부당함을 성토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공은 벼슬을 버리고 선대(先代)의 고향인 김제로 돌아와 정사(精舍)를 짓고 후학(後學)을 가르치며 인재를 양성하는데 몰두하였다. 1624년 인조(仁祖) 21년, 임금이 다시 벼슬을 내리고 불렀으나 몸에 병이 있다는 핑계로 나아가지 않고 오직 경학(經學)에 전념하여 남은 여생을 보냈다. 1634년(인조 12년) 경기도와 호남지방 유림들이 뜻을 모아 경기도 이천(利川)에 사당을 건립하였으나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소실되었고, 752년(영조 28년)에 유림들이 다시 뜻을 모아 이 곳 김제에 지음서원(芝陰書院)을 세우고 받들어 모셨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