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길(吳淵吉)

  • 관리자
  • 2019.01.08
  • 1924
애국지사 오 연 길(吳淵吉)(1901년 ∼ 1968년)
 
* 자 연길(淵吉)
* 호 :송제 (椎齋
)
* 출생지:1901년 7월 3일 김제군 청하면 관상리에서 태어남


선생은 보성 오씨 사직공 현신교위(寶城 吳氏 司直公 顯信校駙) 휘(諱)옥인(玉潾)의 14세손으로 아버지 태현(泰鉉)과 어머니 밀양(密陽) 박씨(朴) 사이의 2남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후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일찍이 한문에 능하고, 매사 빈틈없고 엄하신 아버지 밑에서 한문을 공부하였다. 그러다가16살이 되던 1916년에 4년제이던 만
경 보통 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한다.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민족운동이었다. 당시 만경 보통 학교 4학년이던 선생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만경장날이던 1919년 3월 4일 약 200여 명의 학생을 동원하여 만경군민 200여 명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무력탄압에 항거하였다
.

그 일로 인하여 선생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모진 고문을 받고 나서야 재판에 회부되어 군산법원을 경유, 대구고등법원에서 6개월의 형을 언도받고 옥(獄)살이를 하다가 1919년 8월 10일 출옥(出獄)되었다
.

출옥 후에도 일본 경찰은 감시의 눈을 떼지 않았으며 틈만 있으면 선생을 괴롭혔다. 그런 가운데서도 선생은 얼마 안 되는 농사를 지어 거기서 얻어진 소득으로 인근 아이들에게 민족혼을 가르치는데 힘을 쏟았다. 또한 부모님이 병으로 몸져 누워 있을 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성껏 보살폈으며, 마침내 돌아가시자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르는 등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의 칭송을 한몸에 받았다
.

그 뒤로 집안을 평안하게 꾸려가다가 1968년(무신년) 11월 20일 68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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