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규(安大規)

  • 관리자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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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위할 줄 안 정치가 안 대규(安大規) (1642∼ 1711 년)

 
先生은 김제군 용지면 용암리 도리실에서 출생했다.

공은 순흥(順興) 안씨 16세 손(世孫)으로 선조의 가르침을 본받아 효심이 지극하였다. 성품 또한 대쪽같이 곧고 어질어 옳은 일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으며 청렴결백하여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았다
.

당파싸움이 가장 심했던 이조 19대 숙종 시절에 지금의 함경북도 명천골의 부사로 근무하였는데, 어찌나 백성을 편하게 잘 다스렸는지 당파싸움으로 어지럽던 다른 지방과는 달리 그 곳만은 주민들이 태평세월을 노래하며 살았다
.

그런 공의 사람됨을 아는 숙종은 일찍부터 그를 특별히 아꼈는데 무승지로써 외직(外職)에 근무하는 걸 안타깝게 여겨 좀 더 편안한 내직으로 발령을 냈다. 그러나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던 그는 떠나는 날 모든 주민들이 몰려와 옷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떠나지 못하고 말았다
.

서울에서 공을 기다리던 임금은 아무리 기다려도 공이 오지 않자 크게 노하여 그 원인을 알고자 사람을 급히 명천골로 보냈다. 명천골에 도착하여 나부사를 중심으로 관민이 한 마음 한 몸으로 똘똘 뭉쳐 평화롭게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본 그는 임금에게 본대로 보고 하였다
.

그러자 크게 탄복한 임금은 상으로 직접 쓴 글씨로 만든 병풍을 내려 주었는데, 지금도 이 병풍을 그의 후손인 서울에 사는 안혁순씨가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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