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명종 때의 무장 두 경 승 (杜景升)
선생의 출생은 알 수 없으나 고려 무신 만경 두씨의 시조이다.
무용이 있어 의종 때 공 학군으로 뽑혔다가 대정으로 후덕전의 견룡이 되었다.
1170년 정중부의 난에 많은 무신들이 재물을 약탈했으나 혼자 끝까지 전문을 지켰고 명종 초기에 이의 방에게 발탁되어 내순검지유를 거쳐 낭장이 되었다. 1173년 김보당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고 난 후에 남로 선유 사로서 반란지구의 민심을 수습한 뒤에 장군으로 승진 서북면 병마부사가 되어 창주를 수비했다. 1174년 서경 유수 조위 총이 난을 일으키자 동로가발 병마부사가 되어 군사 5,000여 명을 이끌고 각처에서 난 군을 격파했다. 그 공으로 후군 총관이 되고 계속 그들을 추격 윤인 첨과 함께 연주를 함락, 1176년 마침내 서경을 공략하여 조위 총을 죽였다. 그 공으로 상장군 지어사대사가 되었으며, 1180년 공부상서, 그 후 호부 상서, 추밀원 부사, 참지 정사, 권판병 부사를 거쳐 1193년 문하병장사로 감수국사를 겸임, 삼한 후벽상공신이 된 뒤 이의 민과 함께 문하 시중에 승진 1196년 중서령이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정권을 잡은 최충헌에 의해 자연 도에 유배되어 울분으로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의 금(金)을 훔치려는 가노(家奴)에 의하여 독살되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