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준(李根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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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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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 이 근 준(李根濬) (1874년∼ 1958년)
 

* 자 : 공빈(公彬)
* 호 : 일오(-悟)
* 출생지 :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선생은 1874년 고종(高宗) 9월 5일에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에서 태어났다. 신평 이씨 문정공파 전주진관 병마절제 도위 전 평택현감 휘형수(諱亨樹)의 12세 손으로 자는 공빈(公彬)이고 호는 일오(一悟)라 하였으며 아버지 중추원의관 휘귀연(樞院議官 諱貴淵)과 어머니 해주오공 태윤의 따님 사이 5남 1녀 중 장남이다. 선생은 천성이 순후하고 지기영민(志氣英敏)하여 일찍이 문장문필에 능하신 아버지 밑에서 글을 배우다가, 다시 사종형인 백파 선생에게 수학하여 선현(先賢)들의 도학과 덕행을 익히고 경서는 물론 주역까지도 능하였으나, 다시 동종인 석정 이 선생 문하에서 성리학과 서도(書道) 또한 문장 문필과 제자백가서까지 고루 배워 학문이 달통(達通)하였다. 이렇듯 학문이 깊고 덕행이 어질며 행함이 바르기 때문에 유림에서는 석학으로 존경하여 여러 차례 군경학원 직원으로 추천도 있었을 뿐 아니라 스승으로써 받들며 자여질(子與侄)들의 몽학(蒙學)을 간청하기도 하였으나, 거절하고 문내(門內)나 극빈의 자여질만 데리고 언충신행독경(言忠信行篤敬)과 학문을 겸하고 가리켰다. 선생은 문집으로 '일오미정문고(一悟未定文蘂)'라 이름한 두 권 있는데 권학문(勸學文)이라 하여 사람으로서 배움이며 행동, 언행 등 여러 지침을 말하였고, 또 민노설(憫老說)에는 사람이 낳고 크며 늙어 죽는 즉 생
···사(生老病死) 등을 조리 있게 말하고, 의설(蟻說)에 개미는 작은 벌레이지만은 그 체계는 군신유의(君臣有義)로써 집단생활로 노동의무(勞動義務)와 검근절약(儉勤節約)으로 규칙적인 삶을 갖고 있다며 우리 사람들도 이런 장점을 얻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문장이었다. 산거락에는 평생을 농부로 살며 늙는 여러 가지 애(愛)와 정(情)을 논하고, 외문(畏蚊)설에는 해가 떨어져 어둡기만 하면 사람에게 달려들어 무전취식(無錢取食)으로 착취한다는 문장에 이어 관이앙(觀移秧)에서 농부들의 모심는 그 실상을 그대로 문장화하였을 뿐 아니라 석화에는 만화방춘(萬花芳春) 때에 꽃이 피었으면 오직 좋으련만은 한천상설(寒天霜雪)의 시기에 어이하여 무슨 일로 피어 된서리를 맞느냐는 민족감(民族感)을 문장으로 표시하였고, 또 견신문유감(見新聞有感)에는 산도 옮기고 바다도 옮기었기 때문에 산신이 노하여 사회에 시끄러운 일이 많아지기에 그것이 신문에 난다고 민족의 한을 그리기도 한 시와 문장들이 2권으로 저술되었다. 선생은 효우(孝友)가 돈독하시어 부모에게는 지극한 효심으로 혼정신성(昏定辰省)을 다하였고, 형제간이나 족척과 지우들에게까지도 그 우애가 신의 있게 정성스러웠으며 모든 일에 선비의 유표로서 행하였다. 선생은 연안 김공사영(金公思泳)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경환, 연환, 윤환 등 3남 4녀를 두고 서기 1958년에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돌제에서 향년(享年) 85세로 타계하였다. 돌제에는 선생의 동생인 근형, 근정, 근익, 근조의 아들들과 선생의 둘째 아들인 연환(璉煥)이 살며 가산과 문집 등은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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