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식(朴元植)

  • 관리자
  • 2019.01.08
  • 1876
박 원 식(朴元植) (1875년 ∼ 1947년)
 
* : 문옥(文玉)
* 호 : 근재(勳齎
)
* 출생지 : 김제시 흥사동 제내


선생은 1875년 고종 12년 김제시 백산면 흥사리 제내에서 태어났다. 밀양 박씨 정재공파로 문경공 의중의 19세 손으로 이름은 원식(元植)이라 하고, 자는 문옥(文玉)이며, 호는 근재로 동지돈령부사인 계암공 연수의 아들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온후하며 영특했고 엄하신 아버님 밑에서 글공부를 하였다. 글을 배움에도 남달리 뛰어나 바로 간재 전 선생 우(艮齋 圃 先生 愚)문하에 들어가 많은 글을 배워 모름이 없었다. 이 때 간재 전 선생은 성적경개(惺寂耿介)의 네 글자를 써주며 천실 문학(踐實文學)을 바라며 진실로 격려해 주자 크게 기뻐하였으며, 다시 연재 송 선생에게 들어가 배울 적에는 계신 공구(戒愼恐懼)를 도를 닦는 길잡이로 정한 뒤 힘을 다하여 공부하고 스스로 얻은 바로 행하니 모름이 없이 글에 능하였다. 또한 선생은 글공부를 하면서도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와의 우의도 돈독히 하였다. 어른들을 모심에 있어서도 서늘하고 따뜻한 것을 맞출 줄 알고, 입에 맞는 음식을 어떻게 하여야 되는지를 잘 알아서 실천하였으며 어디가 아프면은 빨리 약을 얻어 낫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상에는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형제간에는 서로 형의 도리와 동생의 도리를 구분하여 행하게 하는 등 효제(孝悌)를 백행지원(百行之源)으로 삼고 성의정심수신제가(誠意正心修身齋家)의 덕을 기본으로 삼았다. 선생은 왜정(倭政)을 지극히 싫어했다. 그래서 세상과는 등지고 덕을 쌓으며 지냈는데, 이 때 나의 행하는 날도 쇠퇴하여짐이 걱정되고 세상은 행하기 어려워지니 싸리문 닫고 지내노라 얼마 되지 않는 논밭 일구어 조용히 지내니 세상의 티끌 없이 이것이 바로 선원이라.

「堪歎言道 日 价徵, 世路難行漂掩扉

徹泊生涯數頃圃, 世鹿不到是仙源」

라는 시를 써서 남기였다. 선생은 또한 자녀들의 교육에도 효제충신(孝悌忠信)의 도에만 힘쓰라 하고 잡념을 버리고 헛된 공상이나 학문에 방해가 되는 모든 일을 금하였다. 선생은 학문하는 바른 길과 의리(義理)의 실천을 병행하여 정도(正道)로 삼았으니 가히 그 생활상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선생은 전주 이공 우룡(全州 李公 愚龍)의 딸에게 장가들어 병규, 병양, 병기, 병일, 병두 등 5형제를 두고, 다시 재가하여 3형제를 두었으며, 1947년 향년 73세로 김제시 백산면 상리 상서에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유고(遺稿)로는 「근재집(勤齋集)」 단 권이 있는데, 김제시 공덕면 황산 리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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