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맹희(姜孟熙)

  • 관리자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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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우러러 존경한 효자 강 맹 희(姜孟熙) (1896-1969)

* : 승삼 (承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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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재 (確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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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김제군 백산면 남산리

선생은 진주 강씨(晋州 姜氏)로 고구려 원수(高句麗 元帥)인 휘 이식(諱 以式)을 시조(始祖)로 하고 완휴제공 휘 승(玩休齋公 諱 昇) 15세 손으로 잠산공 휘 진향(潛山公 諱 震蓍)을 아버지로 어머니인 감찰 동래 정공치원(監察東萊鄭公致元)의 따님 사이의 둘째 아들이다.
선생은 용모가 비범하고 글에 남다른 재주가 있어 글에 능한 아버지 밑에서 부지런히 배우다가 계화도(界火島)로 가서 간제 전선생우(艮齋田先生愚) 문하에서 깊은 학문을 배우고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까지 고루 읽어 모르는 글이 없었다.
선생은 쓸데없는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으며 글과 효심이 아니면 행하지를 않았다. 외출할 때는 반드시 부모님께 어디를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리고 떠났으며 돌아와서는 제일 먼저 부모님께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였다. 아무리 부모님 말씀이 이치에 닿지 않을지라도 한번도 어겨본 일이없으며 언제나 시키는대로 하였다 한다. 그러다가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자 초종장례(初終葬禮)는 물론 극진한 예로써 3년동안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성묘하며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또한 어버이를 잃은 죄인이라 자처하며 모든 행동을 더 한층 조심히 했으며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겸손히 대 했다. 이렇듯 아버님 상 때 3년간, 어머니 상 때 3년간 모두 6년동안 게을리 하지 않고 한결같이 효행을 실천하니 주위에서 크게 칭찬하며 존경하고 유림에 효자로 천거까지 하였으나, 선생은 자식의 도리로 당연한 일이라며 끝내 거절하였다.
또한 선생은 대소중종중(大小中宗中)에도 관심이 많아 종사일을 내일같이 관리하여 위로는 선조(先祖)들의 봉사(奉祠)에 때맞추어 제향(祭享)할 수 있게 하고, 아래로는 선영(先瑩)들 봉사(奉祠)에 자손들의 부담이 안 되게 제각(祭閣)을 짓고 위토(位土)를 마련하여 오늘날까지도 자손들이 그 혜택을 보게 하였다.
선생은 처음에 김제 조공찬영(金堤趙公贊永)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딸 하나를 낳고는 상배(喪配)하자, 다음으로 참봉 전주 이공경호(參奉全州李公景浩)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신화, 신하(信華信夏) 두 아들과 두 딸을 두었다.
선생은 늙어서도 언제나 책을 가까이 하여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으며 많은 시와 책을 지으셨다. 선생의 유고(遣稿)로는 시
·(詩書) 등 수 10권의 문집(文集)이 있는 것으로 모두가 말하나 '확산집(確山集)'을 보면 서()만이 저술되었고 장남인 신화 (信華, 일명 甲時)가 소장(所藏)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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