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서씨(達城徐氏)

  • 관리자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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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면 양전리 용두동 (龍頭洞)에 열녀 서씨부인의 효문이 있다.
()씨 부인은 달성 (達城) 서치우(徐致佑)의 딸로 헌종(憲宗)때 태어나 함양(咸陽) 오병운(吳秉雲)에게 출가했다. 시집온 뒤에 시부모를 효성으로 모시고 지아비를 잘 섬기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병이 나서 앓기 시작하더니 백약이 소용없고 차츰 위독하여 목숨이 경각을 다투게 되었다. 부인은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고 손가락을 잘라 숨이 끊어지는 남편의 입으로 피를 홀려 넣어 3일간 목숨을 연명하게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남편이 세상을 뜨고 말자 부인은 물 한모금도 입에 넣지 않고 남편을 따라 죽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늙은 시어머니가 계시고 어린 자식이 무릎에서 울고 있으니 이런 처지에 어찌 남편과 같이 죽는 것만이 도리겠는가 마음을 고쳐 먹고 늙은 시어머니와 자식에 더욱 정성을 쏟았다. 남편의 3년상을 마친 뒤에도 흰 옷과 흰 띠를 두르고 지냈으며 부지런히 일하여 재산을 불리어 나가니 집안이 크게 번창하였다. 유림들이 칭찬하고 비석을 세웠는데 이 사실은 해동 삼강실록(海東 三綱寶錄) 에 실리게 되었다.

▶효자비 소재지 : 김제시 황산면 봉월리 420 (두월마을)
  ·건립연대 : 미상
  ·황산면사무소에서 지방도 714호선을 따라 약 150m 쯤 가면 도로 오른쪽에 황산 농협이 있고 거기서 200m쯤 더 가면 연리마을로 향하는 길이 있습니다. 200m쯤 가다 왼쪽 야산으로 300m를 더 가면 송산사 건물이 보입니다. 붉은벽돌 담장안에 있는 송산사는 목조와가로 3칸 맞배지붕 건물인데 그 안에 영정과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옆에 「효자 증참의 서공지여」라고 쓴 효자비와 열녀 「증 정부인 김씨 지여」라고 쓴 열녀비가 있습니다.
  ·효자 서희보는 달성인으로 부친께서 병에 걸려 앓아눕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고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했으며, 어머니 상을 당하여서도 3년간 정성껏 시묘했습니다. 그래서 지방선비들의 포양(褒楊)으로 정문을 세웠다고 1996년 김제향교에서 발행한 교지에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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