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흠(金鍊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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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 1908
백구면 부용리 수룡귀지 부락에 효자 자헌대부 호조판서 겸 의금부사지 경연춘추관사 김연흠(資憲大夫 戶曺判書 兼 義禁府事知 經筵春秩館事 金鍊欽)선생의 정려가 모셔져 있다.
선생의 자는 치서(致瑞)요 호는 연촌(蓮村)이니 기선은 금령(金寧)이다. 충의공 휘 문기 (忠毅公 諱 文起) 13세손이며 겁암공 휘 영년(諱 永年) 8세손이며 효갑공의 아들로써 천성이 효성이 지극하여 항시 온화한 얼굴로 부모님께 조석문안을 드리면서 거처를 살피고 뜻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평생 주의를 하므로 향인들이 효동이라 칭찬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봉양하기가 어려우므로 나물을 캐고 고기를 낚아 간신히 봉양하나 조금도 얼굴에 나타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부모님을 대하였다. 부모에 병환이 있을때에는 변을 맛보기도 하면서 천지신명께 쾌유를 기도하기도 했었다. 이러는 동안 한번은 비몽사몽간에 백발노인이 현몽하여 말하기를 어떠한 약을 쓰면 병이 쾌유할 것이라기에 그 약을 구해 복용케 하였든 바 과연 곧 회복하였다. 그 뒤 부친이 마침내 천수를 다하고 별세하니 선생은 통곡하다가 실신까지 하였으나 초종범절을 일준예제하고 3년 시묘하면서 소의소식으로 부모생전에 안락하게 못모신것을 평생 한탄하였다.
순종 병진년 봄에 명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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