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대(蘿處大)

  • 관리자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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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1714 (淵宗 40) 10 28일 김제군 장신리에서 낙천와(樂天窩) 중우(仲佑) 12세손으로 태어났다.

공의 자는 대여(大汝)요 호는 희음재 (希音齋)이니 나주인이다공의 어머니 태산경씨 (泰山景氏)의 태몽에 새우가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르는 것을 보았는데 과연 공의 천품이 총혜(聰慧)하고 골상(骨相)이 빼어났다.

공은 어려서 말을 배울 때부터 천지(天地) 두 글자를 불렀고 아흡살 때에 시를 지어 읊으니 보는 이 놀라와 하였다. 16 세때에 옥병계 윤봉구(玉屛溪 尹鳳九)의 문하에서 수학할때 스승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들었으며 희음재(希音齋)라는 호를 주어서 부르게 되었다.

공은 부친의 병환에 잉어가 좋다는 의원의 말을 듣고 냇가에 가니 개울물이 말라 없는 것을 보고는 하늘에 기도하며 정성을 다하니 별안간에 잉어가 뛰어나와 약으로서 효험을 보았다.  공은 사친이효하고 형우제경하며 학문에 매진하여 대성 (大成)하였다. 향유가 선생의 효우 학행(孝友 學行)을 천관(薦官)하여 1778 (正祖2)에 조정에서 정릉참봉(靖陵參奉)을 제수 받았고 이어서 온릉참봉(溫陵參奉)을 거쳐 선공봉사 겸자문감역(繕工奉事兼紫門監役)으로 특천되었다. 소임 (所任)을 마치고 지병으로 귀향하여 행본효우(行本孝友)와 학구성리 (學究性理)의 도를 닦고 여러 제자를 교육하는데 전력하였다.

향유(鄕儒)가 김제 지음서원 (芝陰書院)에 매년 향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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