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공신(功臣) 조 시 준(趙時峻)
공은 덕후(德厚)의 큰아들로서 어려서부터 성품이 부드럽고 따뜻하였다. 사람을 대할 때도 한결같이 성의와 예로써 대하였으며 사생활은 한 치도 예의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글을 좋아하고 부모에 효도하였으며 항상 나라에 충성할 것을 강조하였다.
1620년(光海君 12年) 무과에 급제하여 해영중군(海營中軍)을 거쳐 회령부사(會寧府事)를 지내다가 1626년(仁祖 2年)에 이괄(李适)의 난(亂)때 큰 공을 세웠으므로 조정에서는 이듬해 1627년(仁祖 5年) 철권(鐵拳)을 하사하고 공신록(功臣錄)에 책록(策錄)하였다. 죽은 뒤에는 조정에서 풍성군(豊成君)에 추봉(追封)하여 장례식을 국장과 비슷한 예장(禮葬)으로 하라고 어명(御命)하여 예장으로 거행하였다 한다. 지금 그의 묘는 김제시 용지면 한사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