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벽(趙連壁)

  • 관리자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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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룡(壁骨龍)으로 출세한 김제 조씨(金堤趙氏) 시조(始祖) 조 연 벽(趙連壁)
 
벽골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김제 조씨의 시조인 조연벽 장군과 벽골룡에 얽힌 이야기다.

조연벽은 어릴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겁이 없었다. 거기다 무술을 좋아하여 날만 새면 말타기, 칼싸움, 활쏘기에 시간 가는줄 몰랐다. 그러니 김제 고을에서는 조연벽을 당할 사람이 없었다.

조연벽은 특히 활을 잘 쏘았다. 화살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꿰뚫는가 하면,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를 화살 한 대로 떨어뜨릴 정도였다.

어느 날이 었다.
그 날도 무술수업으로 하루 해를 보낸 조연벽은 정신없이 곯아 떨어졌다.

-연벽은 일어 나거라.

조연벽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눈 앞에 하얀 옷을 입고, 하얀 수염이 발 끝까지 닿는 할아버지 한 분이 서 계셨다.

-할아버지는 뉘신지요?

-놀랄 것 없다. 나는 벽골제를 지키는 벽골룡이니라.

-그런데, 어인 일로?

-네 도움이 필요해서 왔느니라. 내일 정오 부안 변산에 사는 청룡이 벽골제를 빼앗으러 올 것 같구나. 그러니 나를 도와 청룡을 물리쳐다오.

조연벽은 벽골제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어찌하면 도울 수 있겠는지요?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내가 청룡과 싸움을 벌이거든 화살을 쏘아 청룡을 맞히기만 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청룡을 쏘아야 하느니라. 청룡을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간 곳이 없었다.
조연벽은 소스라치게 놀라 깨었다. 꿈이었다. 그렇지만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또렷하였다.
날이 밝았다. 조연벽은 활과 화살을 들고 그 할아버지가 일러준 벽골제로 갔다. 벽골제는 예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파아란 물 위에서 물오리만 떼지어 자맥질하고 있었다.
조연벽은 활과 화살을 내려놓고 둑에 누웠다. 파아란 하늘에 흰 구름이 한가로이 떠 가고 있었다.

-내가 청룡과 싸우거든 화살을 쏘아 청룡을 맞히기만 하면 된다. 청룡를 쏘아야 하느니라, 청룡을 ‥‥

조연벽은 꿈속에서 들은 벽골룡의 말을 입으로 뇌까려 보았다.

바로 그 때였다. 갑자기 먹구름이 일더니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소리가 하늘을 진동하였다. 그러더니 먹구름 속에서 청룡이 머리를 내밀고 불을 토했다. 조연벽은 활과 화살을 들고 재빨리 일어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벽골제의 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백룡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평소 겁이 없던 조연벽이었지만 다리가 자꾸 후들거렸다. 그렇지만 벽골룡이라는 백룡의 말을 떠올리며 활에 화살을 재었다. 하늘 위에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뺏느냐 뺏기느냐 하는 무서운 싸움이었다. 조연벽은 하늘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아무리 활을 잘 쏘는 조연벽 이었지만 청룡을 겨누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청룡과 백룡이 뒤엉켜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연벽은 때를 기다리며 활을 쥔 손에 힘을 더 했다. 엎치락 뒤치락 싸움은 반나절이나 계속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백룡이 몰리는 것 같았다. 천둥이 울렸다. 그 소리는

-연벽아. 어서 활을 쏘아라. 어서! 하고 외치는 백룡의 울부짖음 같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다. 힘이 부쳐 도망치는 백룡을 청룡이 뒤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를 놓칠세라 조연벽은 백룡을 뒤쫓아가는 청룡의 배를 향해 힘껏 활을 쏘았다.

「휘 익 -.」

「퍽 .」
시위를 떠나 구름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은 여지없이 청룡의 배에 꽂혔다. 청룡이 비틀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자 먹구름 속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것 하나가 조연벽의 발 아래 떨어졌다. 두 자가 넘는 용의 비늘이었다.
눈부신 햇살이 다시 비쳤다. 물속에 숨어 있던 물오리들이 다시 바람을 타고 동동 헤엄을 치기 시작하였다.
조연벽은 이마에 맺힌 구슬같은 땀을 닦고 집으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용의 비늘 한 개가 들려져 있었다.
그 날 밤이었다. 조연벽은 꿈속에서 다시 벽골룡을 만났다.
-고맙네 나는 영원히 벽골제에 살게 되었느니라. 나를 살려 준 보답으로 너의 자손 대대로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할 것이니 그리 알라.
청룡을 죽인 조연벽은 얼마 후 무과에 급제하여 나라의 변방을 지키는 장군이 되었다.
그러던 중 1232년 고려 고종 19년에 몽고군이 침략해 왔다. 조정에서는 조연벽을 대장군으로 임명하여 몽고군과 싸우게 하였다.
대장군이 된 조연벽은 뛰어난 지략과 무술로 처인성에서 몽고군을 맞아 싸운 끝에 적장 살례탑(撤禮塔)을 사살하고 몽고군을 섬멸하였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조정에서는 그 공을 높이 인정하고 녹익조공 봉벽성군(錄翊祚功 封碧城君)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한편 조연벽 장군에게는 기(峻), 서(瑞), 간(簡) 세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학문이 뛰어나 우의정을 비롯한 높은 벼슬에 올랐다.
특히 셋째 아들 간은 태어날 때부터 빼어나게 잘 생겼을 뿐 아니라 등에 북두칠성 모양의 용비늘 일곱 점이 박혀 있고, 양쪽 어깨는 용의비늘로 만들어진 갑옷이 달려 있어 이를 보는 사람들은 벽골룡의 정기(精氣)를 타고 났다며 입을 모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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