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식(宋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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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 1838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에 통달한 송 식(宋 湜) (1848년 -1922년)
 
* : 사열(士悅)
* 호 : 학산(鶴山
)
* 출생지: 김제시 봉남면 종정
.


●지극한 효심과 곧은 성격


선생은 홀로 어렵게 살림을 꾸려 가시는 어머님께 지극한 효심으로 공경(恭敬)하였으나 어머니께서 운명(運命)하시니 초종장례(初終葬禮)는 물론 삼상의례(三喪儀禮)와 시묘례(侍墓禮)까지 있는 지성(至誠)을 다하면서도, 낮에는 손수 논에 나가 일도 하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여 다가 팔아 물물(物物) 교환도 하면서 저녁에는 글을 읽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밤에라도 아는 사람을 찾아 물어서 깨우치는 그야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글공부에 전념하면서도, 새로운 소식이나 새로운 음식이 있으면 이복장형(異腹長兄)에게 먼저 알리고 맛보게 하고, 다음 형님들에게도 똑같이 알리고 맛보게 하는 정성(精誠)과 공경(恭敬)으로 우애를 하였다. 또 갑오동학란(甲午東學亂)이 일어나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이를 깊이 염려하고 친지들과 이웃들을 불러 마음을 안심시키며 슬기롭게 피하게 하였다. 경향각지(京鄕各地)의 많은 문우(文友)들과 교우(交友)하며 지내던 중 경향(京鄕)의 문우들의 권(勸)에 따라 과시장(科試場)에 갔었으나 너무나 많은 잘못과 그릇된 일들이 보이자 그대로 돌아와서는 일체 큰 나들이를 않고 그저 전원(田園)에 묻혀 살며 자여질(子與姪)들에게 성리학(性理學)이며, 병서(兵書)며, 의약(醫學)이며, 복서(卜筮)등을 가르치며 아침, 저녁으로 간농(看農)하며 날마다 글 읽고 지필습서(指筆習書)하는 것을 보는 많은 선비나 문우(文友)들은 등사(登士)치 않고 있음은 국가장래상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 하였다. 선생은 경술일한합방(庚戌日韓合邦)을 앞두고 글을 썼는데, "28代의 임금님으로 500여 년동안 지켜 온 이 나라의 문명이 어인 연고로 동쪽 하늘가에 시달리는고. 이는 세상을 잘못 보는 신하들이 자기 영욕만을 노리기에 이제까지 살아온 그 은혜를 저버리니 참으로 서럽고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구나. 우리가 이제까지 가꾸고 살아온 이 삼천리 강산에 누가 살 것인지 장래가 슬프고 이제 나는 뉘 앞에 머리를 두르고 의지할 것이냐"라는 뜻으로 우리 민족 통분의 슬픔을 읊기도했다. 선생은 도정 김해 김공인배(都正金海 金公仁培)의 따님과 결혼하여 인창, 인건, 인성 등 3남을 두고, 지필습서(指筆習署)와 시부(詩賦)하다가 서기 1922년(壬戌)에 김제시 봉남면 보산리에서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나 정읍시 옹동면 수약동 후록 비봉산 밑에 장사지내니 참봉 완산 최전 구가 찬(撰)하고 손자(孫子)인 열(烈)이 삼가 글을 썼다. 김제시 봉남면 종정과 보산리에는 선생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선생 생가(生家)에는 종손 주철(宗孫 主徹)이 살고 있다. 문집(文集)과 유고(遣稿) 등은 손자인 열(烈)이 간직하고 있으면서 동생 묵(同生 默)과 간행을 서두르고 있으며 선생의 학덕(學德)을 길이 전하려 하고 있다.


선생은 여산 송씨 소윤공파 휘 원미(礪山宋氏 少尹公派 諱元美)의 18세 손이며 사헌부감찰 역천 휘처경의 증손으로 어릴 적에는 진원(振源)이라 불렸고 자(字)는 사열(士悅)이며 호(號)는 학산(鶴山)이라 하였다. 아버지 휘의감(諱義鑑)과 어머니 언양 김공지택(彦陽金公智澤)의 따님에 이어 계배 장택 고공유진(繼配長澤 高公有鎭)의 따님 사이 4남 2녀 중 막내아들로 김제시 봉남면 종정에서 서기 1848년 헌종(憲宗)14년 무신(戊申)에 태어났다. 선생은 나면서부터 풍의(風儀)가 준용(俊容)하여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가도(名門家道)의 후예답게 언행(言行)과 행(行)함이 특이(特異)하였고, 두려운 일이 있어도 놀래지 않고 급한 일이 있어도 서둘지 않는 침착성(沈着性)으로 지기(智氣)가 굉걸영민(宏傑英敏)하여 일찍부터 가도(家道)에 엄하신 아버님 밑에서 글을 배우며 학덕(學德)을 쌓았다. 또한 효우(孝友)가 돈독(敦篤)하였다. 선생은 8세 되던 해에 정외간(丁外艱)으로 잠시 지방적으로 어지럽고 시끄러운 일이 있을 적에는 어른들과 큰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어른과 같이 행동(行動)을 하면서도 조금도 감정(感情)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래며 칭찬하기도 했다. 선생은 계속 학문(學問)에 정진하여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까지 통달(通達)하였는데 문장, 서도, 시부에 더욱 능하여 감히 누가 따를 수 없는 엄연여교의 박식(博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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