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태(宋基泰)

  • 관리자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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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기 태(宋基泰) (1859년 -1927년)
 
* : 치덕(致德)
* 호 : 석천(石泉) 혹운(惑云) 회산(晦山
)
* 출생지 : 김제시 백산면 요교리


선생은 여산 송씨 소윤공파 판결사(礪山宋氏 少尹公派 判決事) 복(復)의 20세 손(孫)으로 자(宇)는 치덕(致德)이요, 호는 석천(石泉) 혹운(或云), 회산(晦山)이라 하였으며, 아버지 가선대부동돈녕(壽善求未同敦寧)인 영섭공과 어머니 정부인 진주 강씨(夫人 晋州 姜氏)사이 2男4女 중 장남으로 서기 1859년(철종) 7월 28일 김제시 백산면 요교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천성(天性)이 순후영민(醇厚英敏)하고 재기(才氣)가 과인(過人)하였을 뿐 아니라 덕행이 독실하고 효성과 친구간의 우의(友義)가 돈독하여 칭찬이 자자했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같은 마을의 석정 이 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학문에 정진하여 '석천시집(石泉詩集)'이라 명제 하여 지은 시문(詩文)이 여섯 권이나 되고, 한시한서(漢詩漢書) 4권외에도 천문서(天文書), 지리서(地理書), 무서(巫書), 의서(醫書) 등 40여 권을 저술하였으며, 이를 응용 실천하도록 가르쳤고, 知識을 얻으면 가르치고 알리며 자신부터 실행(實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효심(孝心)도 매우 특별하여 일가 친척이나 어려운 처지의 이웃들에게 어려운 일을 해결해 주는 일에 앞장섰으며 부모님의 병환이 낫지 않고 위독하자 손수 왼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드리는 정성을 다했기로 김제군지(金堤郡誌)에도 그 효심이 기록되어 있다. 선생은 처음 우주 황수전의 따님과 결혼하여 一男을 두고 상처한 후에는 청송 심동진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二女를 두었는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장남인 정용은 하늘에서 낸 효자였다 한다. 선생은 -男二女의 가장으로 여유 있는 다복한 환경에서 언제나 시부(誇賦)와 지필습서(指筆習書)로 지내다가 서기 1927년에 졸(卒)하였다. 장지를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 전록으로 모시니 당시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대사(大事)로 상주인(喪主)인 장남 정용이 장지까지 상여운구하겠다 하여 김제에서 순창(淳昌)까지 보행 (步行)으로 상여를 메고 가는데, 상여를 메고 가는데 대군만도 24인이요, 상주인 가족, 침식의 절차 기타 준비위원 치산인 등 무려 100여 인의 많은 사람들이 3日동안 행사하였으니 어찌 큰 행사가 아니랴. 이렇게 대행사(大行事)를 끝마칠 때까지 상주는 효심과 예의 범절에 지극하였을 뿐 아니라 삼우제부터 매삭망을 산소에 다니며 행사하였기로 효자 뒤에 효자가 난다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선생의 증손 송순 근이 백산면 상정리 요교에서 선생의 시집 등 유집과 서첩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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