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李東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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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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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 이 동 환(李東煥) (1879년 -1954년)
 
* : 명국(明國)
* 호 : 청암(晴菴
)
* 출생지 : 김제군 백산면 돌제마을


선생은 서기1879년(고종 16년) 6월 24일 김제시 백산면 돌제마을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동환(東煥)이요, 자는 명국(明國)으로 호는 청암(晴菴)이다. 신평 이씨로 그의 시조는 고려조 평장사(平章事) 벼슬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간공(文簡公)이며 이름은 덕명(德明)이다. 조선조에도 이조판서인 상원(上垣)과 부제학(副提學)으로 시호가 문정공(文定公)인 가종(可種)과 평택현감을 역임한 형수(亨樹)는 그의 현조(顯祖)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근문(根泣)으로 비(鈗)는 전주 최씨 봉현(鵬顯)의 딸이다. 처는 동래 정씨 인공(寅恭)의 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인 백파(白域) 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성장해서는 석정 이정직(李定稷) 선생의 문하에서 학업에 심취하였다. 이럴 때 임극제씨가 충청도 율봉 군수로 부임하면서 선생을 초청했다. 이는 선생의 학문이 깊었고 강직한 성품을 높이 평가해서 약관(若冠)이지만 수행할 것을 간청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수행하기에 이르렀고 거기에서도 바른 행동과 학풍을 떨치어 칭찬이 자자했다. 선생이 그 곳에서 내무를 맡아보고 있었는데, 국운이 쇠진하여 끝내는 한일 합방이 되었다. 이래서 선생은 그 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김제시 검산동(劒山潟)에 자리를 잡은 1919년(已未年 二月)에 김제군 입천면(立川面) 훈장을 하였다. 입천면은 현 김제시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유제(裕齋) 송기면(宋基冕) 선생과는 같은 문하생이며 자주 왕래하고 남다른 우정을 나누었음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청암 선생은 특히 김제의 유림을 이끌어 나오며 그 맥을 이었는데, 그가 맡은 직책으로 보아도 가히 짐작을 할 수 있다. 서기 1947년에 무성서원(武城書院)도내의 강장(講長)을 하면서 많은 유림들과 김제의 유림회(儒林會)를 발전시키는데 공이 크다. 향년(享年) 75세인 1954년 김제시 검산동 대검 산에서 별세하였다. 선생은 5남 3녀를 낳았는데 병기, 정기, 방기, 두기, 김용 길의 처, 강기풍의 처, 박우현의 처가 그의 자녀들이다. 선생의 성품은 근면하면서 부지런하여 어려웠던 살림을 차츰차츰 늘려가면서 자녀들을 길렀고, 인정이 많으시어 여러 사람들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또한 선생의 부친과 백파 선생의 유고 집을 만들어 가문의 맥을 이어 가는데 중추가 되었다. '백파유고집'에 수록된 시문을 살펴보면 백파 선생의 아들로써 한 편의 시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나타난다. 이렇듯 선고(先考)에 대한 효심의 지극함이 그의 자손에게 이어져 있음은 여러 가지 면에 나타나고 있으나 특히 청암 선생의 유품을 보장하고 있는 손자를 봄으로써 더욱 그 마음은 굳어지고 있고 또한 그 맥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청암 선생의 유품은 백파 선생의 유고 집과 같이 현재 전북기계공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서예를 하고 있는 석부가 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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