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화(柳志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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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 1839
김제군 성덕면 묘라리에 유지화(柳志和) 공을 모신 충효려 (忠孝闊)가있다. 선생의 자는 준성 (俊聖) 호는 반구당(伴鷗堂) 이라 불렀는데 본관은 진주(崙州) 이다. 일찍이 부친이 돌아가시자 3년시묘를 마치고 효성으로 계모를 봉양하였다. 효성이 지극하다 하여 인조(仁狙) 때에 참봉 벼슬을 받았고 다시 주부(主簿) 에 올랐다. 이때에 병자호란(丙子胡亂) 이 일어나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이때 공은 단신으로 겹겹이 에워싼 호군(胡軍)의 포위를 뚫고 성안에 들어가 임금을 보고 눈물을 흘리니 인조 임금이 공의 충성에 감동하였다. 공은 또한 당시 척화(斥和) 하는 선비들을 찾아가 앞장서서 연명으로 상소를 올리어 척화하는 것이 나라의 기본임을 주장하고 시(誇)를 지어 올리니 공의 출중한 충성과 효심은 당시 유림의 모범이 되었다.

그 후 숙종 때에 이르러 정려를 세우고 만경면 남산사(南山橘)에 배향(配享) 하고 그 충절을 기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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