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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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되어 신라 혜공왕 2년 진표율사가 금당에 미륵장.”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되어 신라 혜공왕 2년 진표율사가 금당에 미륵장육상을 모시고 도량을 중창하여 법상종을 열어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으로 삼았다.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하여 유폐되었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고려 문종 33년(1079) 혜덕왕사가 대사구, 봉천원, 광교원등을 설치하여 전성기를 이루었다. 조선·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당시에는 처영뇌묵대사 등 일천여 승병들의 훈련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후 정유재란시 80여 동의 전각과 산내 암자가 왜군의 손에 전소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선조 34년(1601) 수문대사가 10여명의 도반들과 함께 35년간에 걸쳐 복원불사를 추진하여 대사구 지역만 일부 재건하였다. 조선 말엽에는 환성지안대사가 수많은 스님들이 운집한 가운데 화엄 산림법회를 성대하게 개최하였으며 용명 스님의 순교 등 수 많은 고승 대덕 스님들이 주석하던 절이다. 1986년 원인 모를 화재로 대적광전이 소실되었으나 월주 화상의 원력으로 도제들과 사부대중의 협력을 받아 복원하였고 전주시내에 전북불교회관을 건립하여 전북지역의 포교를 맡고 있는 호남 제일의 수도와 교화의 중심 도량으로 그 면모를 갖추어 미륵십선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하시모토 농장사무실

“일제시대 전라북도 내 일본인 대농장은 동양척식주식회바, 교본(하시모토) 농..”

일제시대 전라북도내 일본인 대농장은 동양척식주식회사, 교본(하시모토)농장, 웅본, 아부, 다목, 우근, 석천, 승부, 정목농장 등 9개였다. 이들 농장들은 500정보 까지는 총독부의 인가를, 그 이상은 일본정부의 인가를 받아야 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국책농장으로 전국적으로 분포하여 대농장을 이루었으며, 교본(하시모토)농장은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의 개간지를 중심으로 농장을 이루었고, 웅본농장은 김제시 죽산면 연포리, 부량면 옥정리, 정읍군 신태인읍 화호리 등지에 농지를 확보했다. 아부농장은 김제시 광활면 일대를, 다목농장은 학부대신 이완용이 소유했던 김제시 진봉면 일대의 토지를 사들여 농장을 이루었다. 우근농장은 도내에 산재된 농장을 경영했으며, 승부농장은 김제시 청하면 일대의 농지를 차지했다. 정목농장은 정읍군 신태인읍 일대의 토지를 소유했다. 이들은 도내 농지의 80%이상을 소유했던 것이다.

외리내촌마을

“외리마을은 지금으로부터 300여년전 장씨, 임씨 등이 처음부터 터를 잡고..”

외리마을은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장씨, 임씨 등이 처음부터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마을로 이웃 내촌보다 뒤늦게 만들어진 마을이다. 「외리」라는 이름은 내촌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이 마을은 임씨들이 주축이 되어 저수지를 쌓으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촌마을은 홍산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1040년대 마을이 생겨날 당시에는 비홍락지(飛鴻洛地)라는 명당이 있다 하여 「홍산촌(鴻山村)」이라 불리었다. 그 후 박씨 문중의 한 장수가 임진왜란 때 싸움터에서 전사하여 그의 말과 안장, 칼만 돌아왔는데, 그 말이 죽은 뒤에 묻었다는 「말미동산」, 기러기가 날아가다 쉬어 간다는 「홍지뫼(鴻止山)」, 화초산 줄기의 산등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뜻으로 「내리」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부터 「내촌(內村)」이라 불리고 있다.

김제평야

“김제는 전라북도 중앙부의 서쪽에 위치한 곳으로 동쪽은 노령산맥의 주 능선..”

김제는 전라북도 중앙부의 서쪽에 위치한 곳으로 동쪽은 노령산맥의 주 능선을 경계로 완주군과 남쪽은 동진강을 경계로 정읍시. 부안군과 북쪽은 만경강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 군산시와 인접하며 서쪽은 서해에 접하고 있다. 어딜가나 풍경의 한 자락에는 반드시 산이 포함되는 우리나라의 지형에서, 김제는 유일하게 땅과 하늘이 일직선으로 맞닿은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몇몇 산지를 제외하면 시 전체가 높이 50m미만의 구릉지와 동진강. 원평천. 만경강 주변의 광대한 충적평야지대로서 호남평야의 중심이 된다.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사이에 펼쳐진 망망한 김만평야를 안은 김제는 전체면적의 거의 절반이 논으로, 우리나라 쌀의 40분의 1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이 곳 사람들은 김만평야를 '징게맹갱외에밋들' 이라 부른다. '외에밋들'은 '너른 들' 곧 평야를 일컫는 말이니 '김제 만경 너른 들'이라는 뜻이 된다.

간척지

“김제에서 부안방면으로 15km정도 가다보면 김제평야의 젓줄인 동진강 하류..”

김제에서 부안방면으로 15km정도 가다보면 김제평야의 젖줄인 동진강 하류가 보이며 그 강둑위로 펼쳐지는 평야, 바로 그곳이 간척지다. 1924년 일제의 동진농업주식회사가 9.5km의 방조제를 준공하여 간척지를 확보한 곳으로 1927년, 1929년, 1932년에 걸쳐 여러개의 방조제를 건설함으로써 만경강 입구의 진봉면을 비롯하여 동진강 입구의 광활면, 죽산면, 동진면 일대에 새 간척지가 조성되고 거기에는 간척지의 불리조건인 저습과 침수위험을 농민생활과 생산의 확대 거점으로서 열상의 계획설정형 취락이 조성되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취락형태인 괴촌과는 다른 이질적인 산촌(散村)이 출현하였다. 이 지역은 일조량이 많고, 병충해 발생이 적고 신생토양지인 간척지는 퇴적유기물과 무기질이 풍부한 갯벌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청결미로 낟알이 크고 투명도가 높아 미질이 우수하고 밥맛이 차지고 쫄깃쫄깃하며, 근래에는 완벽한 도정시설을 갖추어 생산되고 있다.

  • 담당부서 : 벽골제아리랑사업소
  • 연락처 : 063-540-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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