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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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전향

정상규는 만석꾼이 되지만 대부분의 다른 지주들이 그러하듯 소작인들을 몰아세우는 못된 지주였다. 민물새우 알 젖을 장만하기 위해 소작인들의 아내를 내몰아 새우잡이 사역을 시키고 자린고비 짓을 하며 아들들의 교육비조차 아까워 한다. 그의 큰아들 정방현은 대학에 못가게 되자 술주정꾼이 된다. 알거지가 된 정재규는 동생에게 소작인부칠 논을 부탁하나 거절당하고 들녘에서 객사한다. 많은 악법들이 나오면서 사면초가에 직면한 정도규,유승현은 위장 전향한다. 이때 그의 나이는 사십오세였다.

쌀밥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천산산맥 부근의 타슈켄트 황무지에 강제 이주당한 조선아이들과 노인네들이 물이 달라지면서 생긴 풍토병에 의해 줄줄이 죽어갔고 윤선숙의 아들도 죽게 된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살라는 식으로 황무지에다 내다버린 것이었고 이에 분노하여 관에 항의했던 대표들이 기차에서처럼 종적이 묘연해졌다. 소련정책에 대한 반동행위라는 죄목이었다. 또한 고려인은 10년동안 이지역을 벗어날 수 없는 금족령이 내려졌다. 그들은 배급받은 잡곡으로 근근이 배를 채우고 날마다 개간이라는 중노동에 시달리며 감시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려 힘쓴다. 윤선숙은 아리랑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경찰의 신문을 받고 아리랑의 금곡령이 내려진다. 또한 식자층이나 똑똑한 사람들은 딴 곳으로 이송되었다. 죄목은 일본스파이거나 소비에트 정부를 반대한 반동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풀 죽고 맥빠진 채 첫 농사의 가을 걷이가 끝나고 집집마다 쌀이 분배되었다. 쌀밥을 받은 윤선숙의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하고 윤선숙은 목이 메어 밥을 떠 넣을 수가 없었다.

제 3세대의 얼굴

박건식의 작은아들 박용화는 광주 사범학교에 입학하여 유기준과 함께 자취하며 일본인 검사 아들의 가정교사로 고학하며 방학에도 집에 가지 못한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간 유기준의 책꽂이에서 "사회주의와 조선혁명"이라는 인쇄물을 발견하고 한방에서 까맣게 자신을 속였다는 배신감과 두려움을 느끼며 잠시 가정교사집 주인인 이시하라한테 제보해서 대학가는 기회를 삼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이시하라의 딸 에이코는 신년휴가로 부모가 일본에 간 틈을 타 박용화를 유혹하여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입속의 노래

일본군의 대규모 병력을 투입한 포위작전은 만주 항일연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일본군 보급부대를 공격하던 이광민은 총상으로 사망하며 많은 항일군이 일본군에 투항하는 등 항일군부대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송가원은 사령부의 결정에 따라 자신이 맡고 있는 수용소의 환자들을 투항하도록 권유한다. 투항을 역이용해 환자들을 살리자는 계획이었다. 어차피 투항자들이 계속 생겨나 지켜야 할 기밀도 없어지는 형편이기도 했다. 옥비는 하산하려는 대원들에게 타향살이와 아리랑을 들려준다. 적에게 에워 싸이다시피 하고 있는 유격투쟁에서 노래 소리가 퍼져 나가지 않게 가까이 모여 앉은 사람들에게만 들릴 수 있도록 부르는 낮고 가늘어 더욱 애절하고 서러웠다.

그들은 그렇게 속았다

나만석등 만척회사의 꾀임으로 만주로 이민을 떠난 조선인들은 하얼빈에서 서쪽으로 3백여리 떨어진 더 넓은 벌판에 내려진다. 총독부 정책을 대항하는 만척회사에서는 3차 농업이민 1만 1천호 모집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 2백가구는 목포와 신안일대 그리고 정읍과 고창일대에서 모집된 사람들이 섞인 것이었다. 그들은 가족수에 따라 조를 배급받아 연명하며 일본군들의 감시아래 죄인과 똑같은 감옥살이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남자들은 숯을 굽는 등 품삯도 없이 강제 노역을 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정읍에서 온 한서방의 16살난 딸은 군인들에 윤간 당해 자살하며 만주로 오고 부터 잠을 잘 이루지 못하던 남만석의 어머니는 밤중에 조용히 눈을 감는다.

변절자는 용서 말라

많은 문호인들이 친일파로 전향하면서 변절자가 된다. 잡지사 편집장 송중원은 조선의 대문호로부터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 협회 가입권유 편지를 받은 윤일랑과 함께 신세를 한탄하며 처음과 달리 마음이 변해가고 있는 사장이 친일파인 철학교수 황인곤등을 편집위원으로 임명하자 잡지사를 사퇴한다.

거룩한 죽음 이름없는 꽃들

관동군 제2독립수비대 사령관인 노조에 소장을 토벌대장으로 한 (만주3개년 치안숙정계획)은 1939년 10월부터 41년 3월까지 실시하며 7만 5천명의 대병력을 투입했다. 항일연군 간부들에게 막대한 현상금이 붙은 전단이 뿌려지며 항일연군은 많은 피해를 입은 채 소부대로 분사하여 일본군을 피하고 있었다. 굶주림과 피로에 지칠대로 지친 천상길,오삼봉,필녀,수국은 전사하고 방대근은 부대원들과 후일을 기약하고 총을 땅에 묻고 해산한다.

뿌리뽑기

홍씨는 공허스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보름이와 그녀의 딸 금예를 거두어 집을 마련해 준다. 모녀를 거둔다고 해서 아들 동걸이를 가르치는데는 아무탈이 없었던 것이다. 동걸이는 공허가 지어준 이름으로 그의 성씨를 묻지 않고 가고 없는 남편의 성을 붙여 전씨가 되었다. 홍씨는 창씨개명으로 고심한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그 자식들은 학교에 입학을 금지 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들 동걸이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혼자 걱정하는 그녀에게 아들 동걸이는 전(田)자 앞에 큰 대(大)자 하나만 놓으면 된다며 통쾌하게 웃는다. 웃음소리며 웃는 모습에서 홍씨는 공허스님의 환생을 보고 있었다. 창씨개명은 1940년 2월 11일부터 실시되었다

귀향의 뜻

잡지사를 사직한 송중원은 홍명준의 재판관계 자료집 발간 제의를 받으나 거절한다. 엉터리 재판기록을 책으로 만든다는 것은 잘못된 판검사들의 행위를 인정하고 동조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던 것이다. 송중원은 큰아들 준혁이만 서울에 남기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한다. 준혁이는 농과대학을 지망하고 있으나 학비가 없어 제분 공장에 취직하고 있었다. 조선은 농민들이 가장 많고 농민을 살리는 길이 조선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고 있는 아들은 진학 계획을 1년 뒤로 미룬 것이었다. 귀향한 송중원은 집을 구입하고 남은 돈으로 구입한 농토와 장인 신세호가 넘겨준 농지를 가꾸게 된다. 환갑을 넘은 신세호는 술을 먹고 술에 취한 양 면사무소나 일인들의 집에 오줌을 싸고 다녀 사람들로부터 오줌대감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그러나 꼭 일본 관련 벽에 오줌을 싸고 그런 그를 흉하게 생각않고 별명 뒤에 대감이라는 말을 붙여 사람들이 존경을 나타냄에 송중원은 서글픈 장인의 저항정신을 배운다.

진로를 바꿔라

1년씩이나 에이꼬와 육체적 관계를 맺어온 박용화는 성적만 뒤쳐지며 그녀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곡성초등학교에 부임한다. 에이꼬의 쾌락을 충족시켜 주느라 체력만 소모하고 교육자로서 출세도 암담해져 버린 것이었다. 결국 박용화는 같은 교사인 일본인의 냉소에 자극받아 출세를 위해 다른 길을 갈 것을 결심하고 군인의 길이냐 법관의 길이냐를 두고 고심한 끝에 법관이 되기로 작정한다.

정인들의 열매

중일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일본은 부족한 병력 준비를 보충하기 위해 군인 지원제며 징용제를 강행하게 되고 급기야 41년 2월에는 ‘내선일체정신대’라하여 소학교 6학년 졸업생 조선어린이들 6백명을 일본의 군수공장에 보내는 결정을 하기도 한다. 부대가 해산되자 송가원과 옥비는 농사꾼으로 가장하여 마을로 들어 간다. 그들은 방대근과 함께 장사꾼으로 가장하여 임시정부가 있는 중경으로 들어가 송가원은 해룡병원에 취직하였다. 그는 딸을 출산한다.

아사히 사진관

소련 공산당 첩보원 윤철훈, 차은심부부는 관동군 총사령부의 정보를 얻기위해 사진사로 위장하여 사진관을 운영한다. 일본사람들은 사진에다 그 사진을 찍은 연유와 날짜를 써 넣기를 좋아하는 유치한 취미를 갖고 있었고 윤철훈은 그들에게 그런 서비스를 해주곤 했다. 결국 장교들과 그 가족들의 호감을 얻는데 주력하고 사진을 찍으러 온 장교 및 통역관등이 예사로 흘린 말을 기억했다가 정보를 얻어내기도 한다. 또한 윤철훈은 신경역에서 밥장사를 하는 최규승과 인력거를 끄는 하서방을 포섭하여 조직원으로 활용한다.

악법

하시모토는 김제지역을 행정력으로 장악하기 위해 김제읍장으로 취임하며 군산 상공회의소장, 도회의원을 겸임한다. 송중원은 아이들을 모아 옛날 이야기를 통해 민족의식을 깨우친다. 법망을 피해 소규모로 소학교 적령기에 있는 사내아이들만 열서너명을 골라 아침나절에 글과 산수를 집중적으로 가르쳤으나 경찰에서 중지명령을 받자 다른 방법을 궁리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사상범 예방구금령이 공포되며 송중원은 구금조치된다.

새로운 전쟁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했다. 일본인들은 신생강대국인 미국을 이겼다는 승리감에 들뜨고 있었다. 동경에 유학중인 전동걸은 전차에서 만난 이미화에게 조선독립을 믿어야된다고 강조하며 그녀의 하얀 치자꽃이거나 흰도라지꽃 같은 순수함에 마음이 끌린다. 이미화도 그에게서 흡입력을 느끼며 은행의 부장자리에 흡족해 하며 황국신민이 되려고 애쓰는 아버지가 부끄러워진다. 송중원의 아들 송준혁은 같은과 친구인 최문일의 소개로 고등학교부터 일본으로 유학온 거부의 손자 김민근의 가정 교사로 고학 한다.

세가지 풍경

정상규가 정도규에게 아들의 취직을 부탁하나 정도규는 대학진학을 권유하며 거절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대학에 보내지 않으려 함을 알게 된 아들 의현은 논문서를 훔쳐 달아나고 정상규는 분노하여 쓰러진 후 반신 불구가 된다. 정도규는 위장 전향을 속이기 위해 유승현과 미곡상을 동업하며 고서완은 조선의 민족혼을 고취시키는 내용을 게재한 "성서조선" 사건으로 구금된다. 성서조선은 월간지로서 김교신이 내세운 민족종교론의 실천을 위해 발간해 왔던 것이다.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기독교의 민족 종교화 정신은 결국 조선의 독립에 연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강제 징용

보름이의 작은딸 금예는 홍씨의 머슴 배필용에게 강압적으로 몸을 뺏기고 그와 결혼하게 된다. 배필용은 애기중으로 절밥을 얻어 먹다 파계하고 거렁뱅이하던 중에 공허스님이 거둬 홍씨에게 데려 왔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한지 한달 후에 배필용과 김춘배의 아들 김장섭은 징용을 당해 일본 시모노세키로 끌려간다. 배필용은 정을 맘껏 다 풀지 못한 아내와의 이별이 서러웠고 아무래도 아내의 마음이 변해 버릴 것만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하와이의 지원병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하와이 일본인들은 재산동결령과 함께 출국금지령이 내려지며 사면초가의 고립상태에 빠진다. 일본사람들의 보호와 협조아래 암악해온 스파이들의 활동 때문에 일본이 진주만 군함들을 일시에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임시정부에서 광복군을 창설하고 광복군을 모집하게 되자 하와이 이민 2세들은 광복군에 지원한다. 방영근은 아들이 나이가 어려 지원자격에 미달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지원을 권하기가 난처해진다.

결의

동경제대 법학부에 입학한 박용화는 광주사범학교시절 농락 당했던 가정교사집 딸 에이꼬를 찾아 성적인 복수를 한다. 전동걸은 사회주의 혁명 실천을 위한 비밀조직인 사혁회에 가담한다. 같은 회원인 일보인 지요꼬의 자기에 대한 색다른 감정으로 이미화와 그녀를 비교하기도 한다. 이미화는 만나면 아늑하고 푸근한 여자였고 공장노동자의 딸인 지요꼬는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은 동지였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까닭

남만석, 김진배 등 만주에 이민온 조선인들은 일본 경비대의 감시하에 숯구이 등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중국인들에게는 일본의 주구라며 핍박을 당한다. 조선인 처녀들은 일본 불량배들에게 납치되어 군인들에게 넘겨지기도 한다. 김진배의 큰딸도 그들에 납치되어 행방불명이 되었다. 만척에서 굳이 중국사람들의 농토를 빼앗아 조선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게 한 것은 그들의 군량미로 쌀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밭농사밖에 지을 줄 모르는 중국사람들을 몰아내고 논농사가 많은 전라도와 경상도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속여 강제이민을 시켰던 것이다.

신탁 통치설

중경의 임시정부에서는 종전 후 조선에 대한 영국의 처칠 수상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신탁통치설"에 반대하는 집회를 한다.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이 각자 가진 이념을 초월하며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방대근은 비밀감찰 대장의 직책을 맡는다. 중경에 잠입하고 있는 첩자나 밀정들을 색출해 내는 것이 그 조직의 임무였다.

  • 담당부서 : 벽골제아리랑사업소
  • 연락처 : 063-540-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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