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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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하는 땅

코민테른 특파원으로서 원산에서 지하노동운동을 하던 윤철훈은 고정노동운동원이며 교사인 최현옥의 안내로 원산에서 탈출한다. 윤철훈은 코민테른의 명령으로 인민들속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적색노조와 적색농조를 도처에 조직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성취 시키겠다는 희망으로 두만강을 넘었으나 총독부의 경찰력 강화와 만주사변의 여파로 일어나는 심리적 위축, 치안 유지법을 앞세운 무차별 검거 등으로 뜻은 이루지 못하고 탈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격랑속의 격랑

1934년 9월 조선 혁명당군의 지휘자 양세붕 장군이 일본밀정에게 기습당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일본군인들은 양세붕 장군의 시신을 조선인 마을로 옮기고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조선농민들 강압하여 시신에 가해를 하고 목을 자른다. 이 일은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고 조선인들에게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중국 공산당 조직에 합류한 노병갑은 많은 조선인 부대원들이 밀정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되고 자신도 위기에 처하자 일본군에 투항한다.

아버지를 찾아서

송수익은 15년형 언도를 받고 봉천감옥에 수감된다. 송수익의 작은 아들 송가원은 아버지의 옥바라지를 위해 만주로 거처를 옮기기로 작정한다. 형인 송중원은 장남인 자기가 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송가원은 의사인 자신이 가서 병수발을 하는게 더 좋은 조건이라며 형을 만류한다. 송가원의 아내 박미애는 만주로 이사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서고, 이에 송가원은 미련없이 혼자서 만주로 떠난다.

교차점

손판석의 장남 손일남은 일본인 재단사를 가위로 찔러 살인미수죄로 수감된다. 그러나 공허와 송중원의 부탁으로 홍명준이 무료 변호를 해주고 2년형을 받는 것에 그친다. 이경욱은 아버지의 죽음 후에 형의 뒷바라지로 고시공부를 계속하지만 거듭 낙방만 한다. 형은 더 이상 뒷수발을 할 수 없으니 취직하라고 강요하고 이에 고서완의 농장에서 조직관리와 야학을 맡아 일하게 된다. 고서완은 농토를 바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집단농장의 경영이라는 개인적 사회주의화를 구상하고 있었다.

겹 올가미

총독부에서는 학생들의 농촌계몽운동을 전면 중단하고 야학과 조합을 전부 해체시킨다. 득보네 마을 염서방은 자신의 아들과 주인 와다나베 아들의 싸움으로 인해 몽둥이질을 당하고 소작마저 떼이게 된다. 분노한 염서방은 와다나베 일가족 여섯을 몰살시키고 자결하고, 차득보는 염서방이 장한 독립투사라며 염서방의 처 하정댁을 여러모로 돕는다. 일자리를 잃은 손판석은 공허의 소개로 포교당에서 기거하게 된다. 한편 유승현과 연결된 농민조직외에도 군산의 고무공장, 이리의 견사공장에도 조직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정도규는 신원보증령이란 악법으로 자신의 신원을 보증할 연대보증인 셋을 세우라는 경찰서의 명령을 받고 집을 떠나 피신한다. 총독부에서는 학교마다 군사교육과 신사참배를 실시하기 시작한다.

뜨거운 정인

부친의 옥바라지를 하는 송가원은 감옥에 출입하는 일본인 의사 하야시를 통해 부친의 병보석이 가능하도록 조치하나 송수익은 거절한다. 병보석의 조건으로 쓰게 되는 전향서는 독립운동의 포기와 일본천황에 대한 충성 맹세였고 송수익으로서는 사형선고와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송가원은 옥중에 있는 부친보다 따뜻하게 옷을 입어서도 안된다며 허름하게 지내는 등 효심이 극진했다. 차옥녀는 박미애를 만난 다음에 만주로 송가원을 찾아갈 마음을 굳히게 된다. 박미애는 옥녀를 찾아가 송가원은 이제 자기 남편이 아니라며 만주로 가면서 갈라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것이다. 옥녀는 봉천에 도착하고 서울보다 번화함을 느끼며 송가원이 일하는 일광병원을 찾는다. 송가원은 그녀를 반가워하고 끌어 안았다. 옥녀는 송가원이 그토록 반가워 할 줄을 몰랐다.

야릇한 기류

소수민족의 러시아 동화정책으로 연해주의 조선인 자치가 불가능해지면서 여러곳에서 일본스파이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소련비밀경찰의 반동 숙청 바람이 분다. 조강섭, 윤선숙부부는 윤철훈에게 도움을 청해 일본스파이로 오인되어 구속된 강윤배와 최진순부부를 구출한다.

혈청단

장덕풍은 노망하여 가족들에게서 외면 당하며 그의 아들 장칠문은 경찰을 사퇴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받으며 일조물산 주식회사를 차리고 상공회의소 회원이 되며 큰아들을 경찰에 넣는다. 백남일은 아편쟁이로 전락하여 재산을 탕진하고 정미소와 미선소를 장칠문에게 넘겨 준다. 학생운동으로 1년 감옥살이하고 풀려난 오삼봉은 학교를 퇴학당하고 혈청단을 조직하여 부안,옥구,이리 일대의 친일파들 4명을 살해한다. 그는 출감하는 친구들을 모아 다섯이서 혈청단을 조직했던 것이다. 수가 많으면 비밀이 샐 우려가 있어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달빛속의 진혼곡

그동안 가족만 면회가 허용되어 면회를 하지 못했던 필녀는 쓰지 않고 모았던 돈을 내밀며 송가원에게 송수익의 면회를 주선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필녀와 면회를 한 송수익은 자신이 죽으면 화장하여 만주벌판에 뼛가루를 뿌리라 유언하고 운명하게 된다. 송가원, 옥녀, 필녀, 수국이는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민 바람

선만척식주식회사가 창립(1936)되어 만주 이민을 전국적으로 모집한다. 부두에서 막노동으로 하루살이 생활을 하고 있는 부두노동자들에게 이민바람이 일어났다. 목포 남만석은 척식회사의 선전에 유혹되어 그의 매형 김진배 가족과 함께 만주에 이민가기로 결심한다. 박건식은 위암으로 사망하며 그의 아들 박동화는 학생운동에 참여 한 것을 후회하며 관청에 일자리를 옮기려 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질 않는다.

동북항일 연군

조선족 몽고족 티베트족등 소수민족은 항일통일 전선을 구축하여 동북항일 연군이란 유격대를 조직한다. 송가원은 홍두산 원송골에서 다친 유격대원들을 치료하며 옥녀는 그들을 간호한다. 방대근은 항일연군 사령부 직속으로 밀정과 악질 친일배들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별동대의 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군에 투항하여 수색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집을 습격하고 그 대상이 옛 친구인 노병갑인 것을 알고 놀란다. 그러나 가슴아픔을 뒤로 하고 노병갑을 살해한다.

보천보 진공

1937년 6월 5일 동아일보 호외로 독립군들이 함경남도 보천보기습에 대해 보도가 되자 잡지사 편집장인 송중원은 사장인 민동환에게 그 사건에 대해 그 진상을 자세하게 다루자고 제의한다. 그러나 민동환은 거절하며 문인들 원고료 선불을 억제해 달라고 주문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편집권을 위임하며 잡지의 적자는 평생걱정 없다고 장담했던 사장의 마음이 변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송중원은 충격을 받고 고심한다. 그 두가지 조건이 불변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동생의 친구라는 거북스러운 입장도 감내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편 허탁은 기와공장에서 노무자로 피신 생활하며 소극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한다.

압롱강의 밤

보름이는 큰딸 금님이를 철공소 직공에게 시집보내고 아들 삼봉이를 혼인시키려 하나 삼봉이는 돈을 더 벌어 갖고 가겠다며 얼렁뚱땅 넘기곤 한다. 보름이는 아들이 무언가 남모르는 일을 하는 것이라 짐작하지만 묻지 않는다. 묻는다고 사실대로 대답할 것 같지가 않았고 또 아는 것이 두렵기도 했던 것이다. 얼마후 오삼봉의 혈청단이 발각되고 보름이네 가족은 공허의 안내를 받아 피신한다. 오삼봉은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하기를 희망하고 공허는 같은 혈청단원 배영범과 오삼봉을 만주로 안내한다. 그러나 압록강변에서 그들 일행이 노출되자 공허는 둘을 피신시키고 방패막이가 되어 총을 맞고 죽는다.

20만명을 실은 유형 열차

윤철훈은 열성 당원 차은심과 결혼하여 관동군 기지인 장훈에 침투하여 사진관을 운영하며 관동군에 대한 첩보 활동을 한다. 윤철훈의 동생 윤선숙네 가족과 그 일대에 살던 조선족 1천 6백여명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다. 조강섭은 이동 중 부당한 대우에 대해 12명의 대표자와 함께 소련군에 시정 요구하다 행방불명이 되고, 그의 아내 윤선숙은 졸지에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동중에 시어머니가 혹한과 허기에 죽게 되자 눈장례를 치르는 아픔을 겪는데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많은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그렇게 죽게 되자 눈으로 봉분을 만들어 장례를 치럿던 것이다.

국경산악에 삭풍은 불고

일본군의 만주독립군에 대한 토벌 작전은 1934년부터 3년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동북항일연군이 그 세력을 확장하자 막대한 병력을 토벌에 투입한다. 방대근은 항일연군 제1군 제3사 사장을 맡고 이광민은 제3사 2단장 직책을 맡으며 보천보전투로 항일연군의 사기를 높인 김일성은 제2군 제6사의 사장을 맡았다. 필녀 및 수국이와 오삼봉은 후방대에서 활동하였다.

타국의 저승길

하와이 이민자들의 좌장 구상배는 이민온지 33년만에 폐암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몇 십년이 지나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늘 한결같았던 그들은 서로 믿고 의지해왔으나 타국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현실에 방영근은 마음이 아프다. 결국 구상배는 사망하며 방영근이 농장 조장으로 선출된다.

어디계시옵니까

공허스님의 소식이 끊기자 차득보와 운봉스님은 만주 길림성 지삼출네 마을을 방문하여 그간의 소식을 알게 된다. 차득보는 동생이 연모하는 사람을 찾아 만주까지 와서 뜻을 이루고 목숨 걸고 싸움터로 뛰어든 것에 대해 놀라워하며 가슴 뿌듯해 한다. 손판석은 아들 손일남이 재단 기술자로서 수입이 좋아지자 이리로 이사하여 안주한다. 보름이네는 삼봉이의 혈청단 사건으로 수배되자 홍씨집으로 피신한다.

  • 담당부서 : 벽골제아리랑사업소
  • 연락처 : 063-540-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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