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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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게 절기뿐이랴

중국 상해에는 구미의 여러 나라들이 모여있듯 조계에 저마다 소도시를 이루듯 하였다. 방대근은 프랑스조계의 공원에서 양자강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는다. 누이 수국이와 어머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된 방대근은 양치성을 살해하고 어머니의 산소에 성묘하기 위해 만주에 들르지만 이미 양치성은 정식 경찰이 되어 원산으로 간 후였다. 그 뒤로는 의열단 활동으로 매번 목숨을 건 투쟁을 하느라 누나와는 편지만 주고 받았고 누나의 기구하고 가엾은 팔자에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음날 임무수행을 떠나는 방대근과 윤주협을 중심으로 의열단원들이 모여들고 그들은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은 단순히 훗날의 추억을 위해 찍는 것이 아니었다. 새 임무를 맡아 떠나면 그 기념촬영이 대부분 영원한 이별이 되었기 때문에 일종의 의무처럼 그들은 기념촬영을 하곤 했다. 중국상인의 졸개로 변장하고 조선에 들어온 방대근은 호남선을 타고 군산에 도착한다. 군산에 도착한 방대근은 어느덧 중년의 나이를 바라보는 큰누나 보름이와 만나게 되고 고생에 찌든 큰누님의 모습에 가슴이 눈물로 젖는다. 임무를 마친 방대근은 큰누나와 다시 작별하고 한성행 열차를 탄다.

최초의 동정 파업

백남일은 그의 정미소 인부들의 품삯을 일방적으로 내리고 인부 6명이 파업을 시도한다. 백남일은 그들을 해고하고 부두의 막노동자들로 대체하지만 인부들은 매일 정미소 앞에서 시위하고 대신 일하러 들어가는 노동자들을 협박하여 일을 못하게 한다. 경찰에 신고하여 인부들이 잡혀가지만 주변 다른 정미소 인부들이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파업에 동참하자 경찰은 그들을 석방한다. 그리하여 낙합정미소 파업은 8일만에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났으며 조선 최초로 성공시킨 동정 파업이었다. 정도규는 고서완에게 정미소 파업의 성공을 축하하며 ‘민족개조론’을 쓴 이광수와 ‘일선동조론’을 쓴 최남선등을 친일파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사회단체들의 난립현상은 사회주의 사상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한다고 자평한다. 정도규에게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공허스님은 사회주의도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같다며 나라를 되찾자는 뜻만 같으면 누구와도 뜻을 합칠 수 있다며 신용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을 소개하겠다고 약속한다.

그 깊은 한

3.1만세 시위로 목포로 이사한 박건식의 어머니 대목댁은 장손 동화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두에서 고구마장사를 한다. 손자는 남편과 아들을 닮아 공부를 잘 했으며 대목댁은 그것만이 유일한 보람이고 위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부두행상을 단속하는 경찰에 치여 축대 아래로 떨어지면서 허리를 다치고 꼼짝을 못하게 된다. 자신이 다쳐 며느리마저 돈벌이를 포기해야 하고 그러면 손자가 계속해서 공부를 못하게 된다는걸 생각한 대목댁은 댓돌에 머리를 박고 자결한다.

무엇인들 못하랴

차득보가 월엽이가 시집가자 상사병으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보다못한 옥녀는 공허에게 중매를 부탁하고 득보는 연희네와 결혼하게 된다. 오빠에게 농토를 사주고 싶었던 옥녀는 남원명창대회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하고 전주 권번에서 소리꾼으로 일하는 조건으로 농토를 살 수 있게 된다. 득보는 기생이 되는 것을 반대하지만 옥녀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또하나의 날개

동경에서 유학중인 송중원과 허탁은 사회주의 단체에 가입하고 일월회원으로 활동한다. 그러던 중 같은 동네 출신의 새로 가입한 이경욱을 만나게 되고 이경욱은 유명한 독립투사의 아들인 그의 집안내력을 부러워 한다. 반면 이경욱의 아버지는 고향근방에서 유명한 친일파였던 것이다. 고학생 동우회 일부가 흑도회로 그건 다시 풍뢰회와 북성회로 갈라졌다. 북성회는 건설사를 조직해 한성에 거점을 마련 강화해 북풍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동경의 북성회의 명칭을 일월회로 바꾸었다. 한성에서 신사상연구회가 탈바꿈한 화요회는 23년에 조직되어 북풍회와 세력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허탁이 과자배달을 하다가 일본인 아이를 치여 중상을 입히고 구속되자 박정애가 자기 아버지와 동업자인 거상을 통해 해결한다.

하와이 폭풍

1925년 상해 임정 의정원에서 이승만에 대한 탄핵안이 의결되자 하와이 이민들의 분노와 동요가 심해진다. 그들은 독립운동자금을 상해로 보내지 않고 자의로 처분했다는 의정원의 발표에 분개하여 세금과 후원금을 더는 내지 않겠다며 끼리끼리 술타령을 시작한다. 방영근은 모금을 외면하고 구두쇠로 돈을 모아 태평양을 건넌 사람들이 부러워지며 독립자금을 꼬박꼬박 냈다는 떳떳한 긍지감도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그는 20년이란 세월을 허망하게 느끼며 구상배의 중매로 과부와 결혼한다. 오랫동안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방영근의 친구 남용석은 이혼한 처(선미)가 위자료를 주지 않는다고 고발하자 그녀를 살해하고 조선 쪽 벼랑아래에서 자살한다.

꺽이지 않는 꽃

송수익은 결혼한 지 30년, 고향을 떠나온 지 15년만에 아내에게 안부 편지를 쓴다. 막상 편지를 쓰자 그동안 억누르고 억눌러왔던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봇물 터지듯 터지고, 그런 마음 약함을 스스로 채찍질하며 호박반지 하나를 끼워 편지를 보낸다. 또한 송수익은 지삼출이 아들 지만복이 허약해 독립군으로 나서지 못함을 한탄하자 "친일배를 제외한 만주에 사는 모든 동포들이 독립운동을 하고 있으며 만복이도 제능력에 맞춰 일을 하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위안 한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이 공산주의에 심도되어 대종교에 입교하지 않으며, 기존의 교인마저 탈교하는 상황을 걱정한다. 옆동네 밀정 하서방의 밀고로 천수동의 아내 솜리댁과 방수국이 밀정에 의해 납치된다. 솜리댁은 밀정의 속임수에 김동수의 본명이 송수익이란 것을 실토하고 살해되며, 수국이는 그들 밀정이 양치성의 사주로 자기를 납치 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미인계로 유인하여 밀정을 죽이고 도주한다.

삼형제

홍수로 많은 피해를 입은 소작인들이 〈소작료불납동맹〉을 맺고 소작료를 강제징수하려는 정상규와 그의 마름들을 내쫓는다. 정상규는 납세자 보호를 내세워 경찰에 도움을 청하나 일본인 농장에서 일어나는 소작쟁의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며 거절 당하기도 한다. 그는 돌깍쟁이짓을 하며 만석꾼이 되기 위해 논을 사들였다. 정재규는 군산 미두놀이에 빠져 해마다 논을 파는양이 늘어가고 있었다. 인천미두와 군산미두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정도규는 형들의 일을 마음에 접어버리고 동척 및 일본인들 농장에서 소작쟁의를 일으키게 하기위해 조직확대를 진행시킨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경성에서 잡지사 기자를 하고 있는 송중원과 조직을 통해 연결되었다

회오리 바람

불이흥업주식회사 마름인 이동만은 빚놀이 돈장사로 많은 돈을 모아 7천석 잡이가 된다. 55세를 맞은 그는 신년 신수점에 환갑잔치처럼 생일잔치를 하면 부귀영화와 수명장수한다는 점괘로 잔치를 벌인다. 이경욱은 아버지의 생일잔치에 소리꾼으로 불려온 차옥녀(옥비)의 소리와 자태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한편 원산 경찰서 형사인 양치성이 군산출장중에 만주송수익의 정보를 탄로하자 송수익의 가족과 신세호가 체포된다. 송수익의 아내 안씨와 아들 송중원,신세호는 전기고문등 갖은 고문을 당해 반 죽음이 된다.

아리랑

한성 단성사에서 "아리랑"영화가 7일을 넘기고 10일이나 연장하며 초만원을 이룬다. 영화"아리랑"은 나운규의 작품으로 일본인을 감독으로 내세워 총독부의 검열을 피해 상영되면서 조선사람들 전부의 가슴을 뒤흔들고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이다. 허탁,홍명준은 "아리랑"을 관람하고 문학이 독립 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송중원이 문학을 하려고 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한곳으로 모아지는 힘

송수익,지삼출등은 길림성 부근의 땅을 소작료가 아닌 저렴한 사용료로 장기간 빌리게 된다. 그들은 나이든 대원들의 안정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투쟁의 일선에서 물러난 대원들을 중심으로 독립마을을 건설하고 그곳을 투쟁사업의 거점으로 삼을 작정이었다.한편 송중원의 전주고보 동창인 이광민은 윤철훈과 함께 소만 국경을 넘나들며 만주에서 공산당 운동을 한다. 이광민을 사랑하는 윤철훈의 사촌동생 윤선숙은 애틋한 정을 느끼고 있는 이광민이 공산주의 국제연대를 위해 중국 광동으로 떠나려 하자 그에게 몸을 허락, 정을 나눈다.

흉계와 유린

사찰과장 고마다는 이동만의 생일잔치에서 소리꾼 옥비를 본 다음 그녀를 탐내기 시작한다. 그는 이동만에게 노골적으로 자기의 속뜻을 털어놓았다. 이동만은 사람을 가운데 놓아 여러차례 거금의 돈을 주고 그녀를 사려하나 천만금을 준다해도 소용없다며 거절 당한다. 고마다의 안달에 노심초사하던 이동만은 옥비와 득보남매가 서로 끔찍하게 위한다는 것을 알고 득보를 미끼로 옥비를 유린한다. 차득보를 농우회원 이라는 이유로 구속하고 석방해 주겠다는 미끼를 만들었던 것이다. 양치성의 밀고로 송수익일가가 투옥되자 금강산으로 피신했던 공허스님은 양복에 중절모자를 쓰고 콧수염까지 기른 개명 멋쟁이로 가장하여 최유강, 안재한등을 만나 신간회의 취지를 설명하고 회원들을 물색해 줄 것을 부탁한다. 송수익의 작은아들 송가원은 전주고보생들의 동맹휴학으로 일인 교장을 몰아내고, 주동자로 퇴학처분 당하여 모친 병수발하며 수감중인 형 중원을 면회다닌다. 송수익의 처 안씨는 출감하여 중풍으로 고생하며 송중원은 징역살이하게 된다.

피내림은 그렇게

못먹고 헐벗으며 갖은 고생을하며 아들 삼봉이를 남부럽지 않게 가르칠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일념으로 살아온 보름이는 자그마한 점방을 차리고 17살된 삼봉이를 고보에 입학시키며 감회에 젖는다. 총기가 좋아 세끼야를 잊을 리 없는 삼봉이가 세끼야의 딸인 큰딸 금님이를 구박하지않고 아껴주는 속깊고 듬직함이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피내림이라고 생각했다. 손판석의 아내 부안댁은 큰아들 일남이가 늦게나마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양복점에 보낸 것을 생각하며 삼봉이의 고보입학을 축하함과 아울러 부러워 한다. 손판석가족 아홉식구는 먹고 살기도 힘겨울 지경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무주에 있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산소를 찾은 삼봉이는 어머니로부터 그들이 왜놈들에게 피살당한 것을 듣고 부모의 원한을 갚겠다고 다짐한다. 송수익의 처 안씨를 병문안 가는 신세호는 당산나무아래에서 어린이들이 부르는 새로운 아리랑 노래를 들으며 그렇게 유행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3.1운동이 행동적 저항이라면 활동사진〈아리랑〉은 정신적 저항을 공감시킨 것 이었다. 송중원은 면회온 동생 가원이에게 의사가 되면 자유스럽고 좋은 일도 할수 있으니 경성제대 의학부에 진학하라 권유한다.

대륙의 좌절

1927년 장개석이 쿠데타를 일으켜 남경국민정부를 조직함에 따라 국공(국민당과공산당)분열이 이루어 지게 되자 광동 중국 혁명군에 가담했던 조선의용군들은 크게 낙담하여 분산한다. 그들은 국제연대에 의해 중국혁명을 성공시키고 조국해방을 달성하자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연해주의 독립군 100여명 만주의 독립군 400여명, 국내에서 온 100여명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돌아가기로 결정했다.연해주에서 온 윤철훈은 돌아가기로 결정하며 이광민은 의열단의 방대근을 찾아간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윤철훈을 통해서였다. 윤철훈은 광동에 도착하자마자 의열단을 찾아 나섰다. 의열단이 광동으로 이동해 있다는 것을 상해에서 알았던 것이다. 국내에서 온 허탁은 만주에서 온 독립군들을 찾아 다니며 송수익을 아는 사람을 찾던 중 천수동의 아들 천상길을 만나 송수익을 찾아 간다.

사무치는 그리움

이동만은 불이흥업주식회사에 요시다가 퇴임하고 새로 부임한 지배인으로부터 해고 당한다. 그는 아들 이동만이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한을 풀어주기 바라며 동경대법대를 졸업한 아들을 절간에 몰아 댄다. 절간에서 공부하는 이경욱은 대학3년말 아버지의 생일잔치에서 보았던 소리꾼 차옥녀의 모습이 아른거려 책을 잡을수 없었다. 애타게 그녀를 찾던 이경욱은 머슴으로부터 그녀가 사찰과장에게 유린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더욱 그리워 한다. 한편 하시모토는 농장을 군대식으로 조직해 외부세력의 침투로 발생하는 소작쟁의 근절책을 추진하여 효과를 보게 되며 억압을 당하는 소작인들의 불만이 커지게 되자 출산한 소작인들에게 미역을 선물하는 선심을 쓰기도 한다.

원인과 결과

조선공산당은 파벌간의 싸움으로 당의 분열과 소모를 초래하고 상대측을 경찰이나 헌병대에 밀고하는 등 자멸하여 붕괴된다. 중앙당 생활을 하던 정도규는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에 고서완과 함께 체포된다. 광동 국제공산군에 가담했던 허탁은 천상길의 안내로 만주 송수익을 상면하고 귀국한다. 출감하여 몸을 추스리고 있는 송중원을 방문한 그는 집안에 서려있는 궁색함을 느끼며 하룻밤을 지내고 상경한다. 허탁은 만주에서 송수익을 상면했을때를 회상하며 송중원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허탁이 송수익에게 고향의 아내 및 아들이 투옥되었다는 사실을 전하자 별다른 내색을 않던 송수익은 그믐달이 뜬 새벽어둠속의 허허벌판 만주땅에 무릎을 꿇고 흐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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