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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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오리 바람

정신 재무장 교육을 받은 양치성은 압록강변의 일본군 나남수비대에 배속된다. 그리고 등짐장사로 가장하고 만주에 침투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색출에 나선다. 한편 송수익은 통화현 대종교 교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주해오는 동포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투쟁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새로 개척되는 지역을 소개시켜 정착토록 한다. 일본은 간교한 술책을 부려 중국 관헌들과 함께 통화현 대종교 간부교도를 체포하려 한다. 소식을 접한 송수익은 책임자 한법린과 함께 무송현으로 피해 그곳 무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훈련을 가르친다.

육혈포 강도

폭력배 두목이 된 서무룡은 그가 좋아했던 방수국을 강간한 뒤 명씨박이눈이 된 백남일에게 분풀이를 하며 세끼야가 출근하고 없는 틈을 타 보름이 집을 찾아 그녀의 몸을 뺏곤 한다. 정재규는 대한광복단으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내놓으라는 포고문을 받고 경찰서에 신고하지만 경찰 대신 서무룡의 건달패들을 배치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경호는 신경쓰지 않고 침모의 딸을 겁탈하는 등 행패만 부리며 돈도 뜯어낸다. 대한광복단은 군자금 조달을 위해 지주들에게 통고문을 띄우는 공개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허는 조달방법의 실효를 믿지 않아 그 조직에 가담하지 않았다.

서당을 없애라

국내에서의 서당교육의 양적확대와 질적향상은 국외에서의 독립군양성과 함께 나라를 되찾기 위한 두가지 중대사업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총독부는 <서당규칙> 을 공표하여 서당활동을 제한한다. 공허는 자신이 선을 대고있는 서당선생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그들을 바쁘게 만나고 다닌다. 그리고 먼저 신고서를 제출한 뒤 그 다음 방안을 찾아가자고 당부한다.토지조사사업으로 하시모토는 죽산면의 반을 넘게 차지하는 대지주가 되어있었다

뙤약볕, 진펄밭

정도규가 일본유학을 떠나려고 하자 그의 두 형은 재산을 대신 맡아준다 선심을 쓴다. 그러나 정도규는 살림을 아내에게 맡기고 그렇게 일을 꾸미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한스럽고 서글프다. 정도규는 서당 동문이었던 유승현집을 방문하나 그는 야학에서 금지 사항을 교육했다는 이유로 주재소에 끌려가 있었다. 정도규는 주재소에서도 유승현을 면회하지 못하고 귀가하고, 귀가 중 조선아이들이 일본아이들에게 행패를 당하면서도 부모들이 소작을 떼일까봐 대항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만주의 함성

등짐장수로 가장한 밀정 양치성은 통화현에 들어서면서 전라도 사람들이 마을을 이룬 곳에 도착한다. 전라도 김제 사람들이라는 말에 조금 망설이지만 마을에 대종교 교당이 있다는 말을 듣고 들어갈 결심을 한다. 처음보는 얼굴인 탓에 양치성은 지삼출등에게 수색을 당하지만 세심한 수색에도 불구하고 정체가 탄로나지 않게 된다. 신분을 확인당한 뒤 양치성은 주기적으로 마을에 찾아오고, 정보를 캐는 한편으로는 필녀를 앞세워 수국이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한다. 송수익은 방대근과 김시국등을 데리고 연해주에서 총을 구입하기 위해 신한촌 한인 청년단 간부 윤철훈과 조강섭을 만난다. 한인 청년단은 소련의 백군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된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조직되었으며 단원대부분이 공산 당원이 된다. 윤철훈이 방대근등 일행에게 한인 청년단 가입을 제의하자 방대근은 조직의 일원으로써 조직의 허락없이는 가입이 어렵다고 대답하며 앞으로 협동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한다. 현명하게 대답하는 방대근을 바라보며 송수익은 마음 뿌듯하게 생각하고 그 동안의 만주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으며 만주땅에는 수많은 방대근을 키워냈음을 믿는다. 독립지사 39인의 이름으로 범민족의 대표성을 확보한 최초의(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된다.

폭풍전야

장면 1 :상해 신한 청년단 모임 - 여운형,김구,장덕수,조동호,신석우등 독립운동가들이 선언서를 읽어보며 파리 강화회의와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독립건의서를 전달하기로 결정한다. 장면 2 : 미국워싱톤 국무성 앞 - 미국국무성이 한인대표로 인정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하려는 정한경,민찬호,이승만등의 출국을 불허한다. 미국의 속뜻을 의심하며 외교독립론에 회의를 제의하는 정한경과 민찬호와는 반대로 이승만은 미국은 조선의 편이며 미국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면 3 : 동경유학생 웅변 대회장 - 동경 조선인 유학생 5백여명이 모여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다 경찰들에 줄줄이 잡혀간다. 장면 4 : 하와이 국민군단 훈련소 방영근을 비롯하여 하와이에 이주해 온 조선남자들은 목총을 가지고 열심히 군사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음에 방황하며 토론하나 속뜻을 몰라 답답하긴 교관이나 훈련생들이나 마찬가지다. 장면 5 : 간다쿠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 신년 유학생들은 모여 진지하게 회의를 한후 뜻을 같이 하기로 결의한다. 장면 6 : 중앙학교의 밤모임 조선에서는 독립운동의 민족대표를 뽑고 선언서 작성 할 사람을 선정한다. 장면 7 : 전민족의 운동으로 확대 결정 시기가 적절하다는 식자층의 지지로 최대의 참여와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 참여범위를 확대하기로 한다. 장면 8 : 동경의 2·8 독립선언 조선기독교 청년회관에 6백여명의 학생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다. 장면 9 : 한국위임통치 청원사 발송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조선의 위임통치를 부탁하는 청원서를 미국에 제출한다. 장면 10 : 모든 운동세력들의 대연합 기독교, 불교, 천도교 할 것 없이 모든 종교세력들이 연합하여 독립운동선언에 참가하기로 한다

폭발하는 화산

탑골공원에서는 학생들의 선창을 따라 긴 대열을 이룬 군중들이 계속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공허스님은 도림스님과 함께 대열에서 빠져나와 그 감격스런 장면을 보며 콧날 매운 감격과 가슴 뻐근함을 느낀다. 탑골공원에서의 만세운동을 보고 기차를 탄 공허는 도림으로부터 건네 받은 독립선언서와 지하신문인〈조선독립신문〉을 배포하기 위해 이리역에 내리고, 자신보다 먼저 서울소식이 와있음에 놀란다.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거사시일을 앞둔 공허는 군산에서의 만세운동소식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군산에서의 시위확산을 위해 신세호를 만난 공허는 이미 신세호가 독립선언서를 읽어봤음을 듣고 군산의 시위와 학생조직이 직결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곧 전주에서도 시위가 일어날 것을 직감한다. 이틀 뒤 전주에 이어 이리,강경에서 만세열풍이 일어 났다. 그런데 학생이 주도하지 않은 시위가 김제 장날 장터에서 불이 붙었다. 공허는 김제장터에서 시위하던 거렁뱅이 차득보에게 전단의 운반과 주재소등을 정탐하도록 한다. 고종황제의 장례가 끝나자 경찰과 헌병대에서 시위대를 무력진압한다. 시위진압과정에서의 무력진압은 물론이고 10여년전 의병들을 잡아다가 저지른 만행을 재현하듯 만세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을 동네주민들 앞에서 처형한다. 만세운동중 김춘배는 순사의 칼에 찔려 죽고, 박건식은 여러 시위대들과 밤이면 일인들의 농가를 기습해 불을 지른다. 백종두는 친화회의 건달패들을 이끌고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가 야간기습을 당해 몰매 맞아 죽는다. 누군가의 밀고로 야간 활동이 경찰에 알려지자 도망다니던 박건식은 가족들과 함께 목포로 피신 이주한다.

무장 투쟁의 대열

3월 만세 시위를 계기로 만주 서간도에는 여러 개의 단체가 생기고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군정부와 대한독립단이었다. 군정부는 공화주의를 표방하고 대부분 신학문을 접한 대종교 교도들이었으며 대한독립단은 복벽주의를 주장하는 거의가 평안도 양반출신들이 모인 단체였다. 군정부에 속한 지삼출과 방대근은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만세시위 주동자로 피신해 오거나 독립투쟁에 나설 각오로 집을 떠나온 젊은이들을 맞이한다. 통화시가지에서 만세 시위를 하던 수국이를 본 지주 추가 아들이 그녀를 첩으로 삼으려 강압하자 방대근이네 세 식구는 송수익의 소개로 북간도로 이주하여 정의단의 환대로 정착하게 된다. 북간도에서도 만세시위를 계기로 독립운동단체들이 17개나 생겼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대한정의단과 대한국민회였다. 상해임시정부를 유일 정부로 인정함과 아울러 그 위상을 높여주기 위해 대한정의단은 북로군정서로 명칭을 바꾸며 대한국민회도 상해임시정부를 지지하며 통합노력에 호응하고 나섰다. 그러나 서간도의 대한독립단과 북간도의 군무도독부는 상해임시정부가 임금을 받들지 않는다며 호응하지 않는다. 한편 김시국은 감골댁을 찾아 수국이와 결혼을 청하나 수국이로부터 거절 당하고 밀정으로 스며든 양치성에게 살해 당한다.

가면극

미국정부가 1917년 동양인 절대배척법을 제정, 사진결혼을 중단시키자 장가를 못든 조선남자들의 수가 장가를 든 수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러나 하와이나 중국여자들과의 결혼은 절대 하려고 하지 않았다. 3.1만세 소식이 바다를 건너오자 하와이도 들뜨며 만세 시위가 벌어졌다. 방영근은 교회를 찾아 목사의 손을 빌려 고향에 편지를 띄우나 답장을 받지 못하고 점점 말이 없어지며 우울해져 갔다. 한편 최유강과 안재한은 주재소의 협박으로 친일단체인 자문위원회에 가입되며, 서무룡은 경찰의 사주로 일심회, 장덕풍은 보광회 회장을 조직한다. 일제는 그전의 폭력통치를 호도하기위해 허울좋은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립전쟁의 깃발

3.1운동에 앞장 섰던 젊은이들이 상해로 몸을 피신하고 그들은 상해임시 정부에서 소개하는 여러 독립군 단체들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하여 배속된다. 북간도의 대한북로군은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 수비대에 승리하지만 서간도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합동수색대에 의해 독립군 소탕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송수익의 마을에 들어온 토벌대에 의해 배두성이 살해되고 천수동은 잡혀간다. 만주땅의 군벌 장작림의 묵인아래 일본군은 서간도 일대를 뒤지고 다녔던 것이다. 또한 마적떼들의 신흥무관학교 습격이 자주 일어나자 폐교시키고 학생들은 서로군정서와 북로군정서의 독립군으로 편성 하게 된다. 봉오동 전투에서 참패한 일본이 장작림에게 압력을 가하여 독립군을 토벌하기로 결정하자, 중국군과 독립군은 서로 타협하여 교전하지 않기로 한다. 일본은 중국군의 토벌이 전혀 실효가 없자 훈춘사건을 조작해 북간도 일대의 조선인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마을을 불질러 댔다. 일본은 마적단을 매수하여 훈춘을 습격하여 일본인을 죽이고 그 빌미로 병력을 만주에 투입했던 것이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들은 연합하여 청산리 골짜기에서 전투를 벌인다. 김좌진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의 소대장으로 청산리 백운평 전투에 참가 한 방대근 부대는 완전한 승리를 하며, 홍범도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과 그 연합부대는 완루구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독립군들은 청산리 일대와 반대쪽으로 길을 떠난다

대학살

간도 출병에 대패한 일본은 독립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농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양치성은 농민들의 토벌이 시작되기 전에 영사관 임형사와 모의하여 수국이를 체포한후 토벌대를 안내하여 감골댁과 그녀의 마을 주민들을 몰살 시킨다. 동생 방대근의 거처를 대라고 취조당하던 수국이는 임형사에게 강간을 당한 후 양치성에게 넘겨진다. 양치성은 수국이와 함께 감골댁의 시신을 찾아 장사를 치러주는등 가면의 선심을 쓴다. 독립군들을 뒤쫓다 놓쳐버린 일본군들은 조선농민들 토벌을 더 확대하고, 시교당 예배당 등을 포함 3천여채 이상을 소각하고 1만여명을 살해하였다. 이를 경신참변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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